가업을 잇다

가업​​(家業)이란 대를 이어 물려받은 집안의 생업을 말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제로 포인트(zero point)에서 우리는 기적같이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청년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직장에 몸담아 일을 했고 가업을 이어받는 자식들은 가뭄에 콩 나듯 했습니다. 반면에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나라들을 침략하고 괴롭혔던 일본은 비록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았지만 외침을 별로 받지 않은 결과 가업이 200년 또는 300년 이상 이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 접어들면서 고속 성장의 시기가 지나고 수명은 급격히 늘었지만 인공지능 로봇과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직장인의 퇴직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MZ세대 중에는 새삼 가업을 다시 돌아보고 승계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물고기 마을은 세계 최대의 물고기 테마파크입니다. 유머일번지 김재화 작가의 소개로 2016년 물고기 마을을 방문해서 류병덕 회장을 만났습니다. 수백 종에 달하는 어종과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를 지난 40년 동안 보살피며 오늘의 물고기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류 회장은 20대에 처음 물고기가 부화하는 장면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해 이 일을 시작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물고기가 부화하는 장면이 너무나 신비롭고 놀랍다며 마치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지난해부터 물고기 마을 부근이 수용된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류 회장은 정든 그곳을 떠나 수도권 부근으로 이주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뿐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왔던 류 회장의 지식과 경험이 크나큰 자산입니다. 류 회장은 앞으로 물고기 마을을 더욱 성장시켜 국내는 물론 세계로 뻗어 나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토록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도 류 회장에게 큰 보람을 갖게 한 것은 두 아들이 모두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겁니다. 필자가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두 아들은 주중에는 완도에 있는 수산대학을 다니고 주말에는 한 주도 빠짐없이 물고기 마을에서 류 회장을 도와 일을 했다고 합니다. 류 회장은 이제 20대 후반인 두 아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전국을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류 회장이 다녀도 두 아들이 물고기 마을을 잘 운영하고 있으니 든든하답니다. 이제는 모바일 시대를 넘어 메타버스 시대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원주민인 두 아들이 류 회장의 가업을 이어 온오프라인으로 물고기 마을을 더욱 든든하게 세워갈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두 아들은 예의도 바릅니다. 아버지인 류 회장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물론 고객에게도 살갑게 다가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젊은 두 아들에게 온갖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유혹이 있었을 것으로 쉬이 짐작됩니다. 어릴 적부터 온몸이 부서지도록 고생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은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두 아들은 가업을 잇기로 일찌감치 작정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수산학을 전공했습니다. 이제 이런 두 아들의 뜻을 함께 할 며느릿감을 맞이하고 싶다고 류 회장은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필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도 류 회장은 언제나 감사하다면서 깍듯이 인사를 합니다. 새로 서울 근교에 물고기 마을을 만들면 김 작가와 나의 공간도 꾸며 준다고 합니다. 말만 들어도 흐뭇합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MZ세대 자녀들이 아직 어리고 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업을 잇는 자녀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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