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FIRE)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라이프스타일 혁명으로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행복의 비결이란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으로 행복해지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파이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꿈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도 지난 40년 꾸준히 성장하던 산업화 시대에는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만 해도 시간이 흐르면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런 착시 현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에는 직장이나 사회 선배들의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가기만 하면 그럭저럭 평균치의 삶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없다. 월급날 꼬박꼬박 통장에 월급이 꽂히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수명은 점점 길어져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3040세대 직장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전혀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직장은 언제까지나 든든하고 자신은 영원히 그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스콧 리킨스는 그의 저서 <FIRE>에서 이런 환상을 하루 빨리 깨어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파이어로 가는 7단계를 제시하면서 일일지출 비용을 줄이고 특히 주택, 자동차, 식비를 줄이라고 강조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이렇게 결단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직장에 다니다가 어느날 갑자기 퇴직이라도 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후회하게 된다.
필자가 30대와 40대 시절 직장에 다닐 때에는 소위 품위유지비라는 용어가 있었다. 그래도 이만한 정도의 직장을 다니고 있고 사회적 지위로 보나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매달 이 정도의 소비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식의 허울 좋은 과다지출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겁없고 철없던 젊은 시절의 낭비 요소가 가득한 좋지 못한 생활 습관에 불과했다. 이제는 저성장의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고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퇴직을 해야 하며 심지어 최근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기업이나 상점들이 무더기로 문을 닫는 상황이 전개되고 보니 이제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일자리 한파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불과 십여전 전까지는 그래도 자신이 원한다면 적어도 50대 중반까지는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결국 파이어가 아무리 와도 의식적으로 이를 외면하면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더구나 싱글족이 아니라 배우자와 자식이 있다면 더욱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게다가 부부 중 어느 한쪽이 파이어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어도 배우자가 반대하면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스콧 리킨스도 아내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만큼 파이어는 말은 쉽지만 정작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 미래는 파이어가 주도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닌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싶겠지만 그런 상황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파이어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