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무엇이든 격렬하게 부딪히면 열이 발생하듯이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는 좁고 거칠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다. 얼핏 생각하면 자연을 벗삼아 조용한 공간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부대끼고 수많은 다툼이 일어나야 이런 변화를 이기려는 생존 본능이 발동하고 새로운 생각이 생겨난다. 인류는 원시 수렵시대 때보다 농사를 지으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문명의 발전을 위한 페달을 제대로 밟기 시작했다. 그러다 농경시대를 벗어나 공업 위주의 산업 사회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다시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었다. 동서양이 서로 소통하고 다양한 상거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 그 시절부터였다. 결국 이러한 자극이 발전을 부추긴 셈이다.

도시화와 집중화는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트는 큰 역할을 했다. 흩어져 살 때는 전혀 생각할 필요조차 없던 일이지만 막상 사람이 모이면 우선 질서가 필요하고 룰도 만들어야 했다. 살아 남으려는 본능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까지 해 오던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도 없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길을 열어 간다. 흔히 넓은 세상을 보아야만 폭넓은 사고를 하게 된다고 하지만 좁은 세상에서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의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필요는 수요를 낳고 수요는 공급을 자극한다.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장미꽃이 피어난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은 틀림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은 언제나 날개를 펴고 날아다닌다. 생각이 멈추면 우리 삶도 멈춘다. 새롭고 참신한 생각은 지금 처한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는다. 환경에 지배를 받느냐 그렇지 않고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느냐는 결정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산과 들을 벗삼아 글을 쓰는 작가도 한 때는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좌충우돌을 많이 겪었다. 일상의 삶이 모두 글감으로 숙성을 지나 발효하고 나서야 조금씩 글로 다져진다. 이를 참지 못하면 설익은 글이 되고야 만다. 날아다니는 생각을 붙들어 매는 끈은 바로 글쓰기다. 멈추지 않으면 정의할 수 없다. 온통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는 거처를 두지 못한다. 생각이 잠을 자야 새벽이 온다. 기지개를 켜면서 활짝 창문을 열어젖히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머리를 쥐어짠다고 새로운 생각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다. 복잡한 환경에서 고의로 느슨한 여유를 가질 때 본격적으로 생각의 폭포수가 쏟아진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방법은 좁은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초고가 좋아도 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생각이 미처 정제되지 않은 탓이다. 퇴고를 하면서 잘근잘근 씹은 후 뱉으면 캡슐이 되어 상품 가치가 생긴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새로운 생각을 펼쳐낼 작은 공간은 어디엔가 존재한다. 다만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사고의 틀을 바꾸고 시야를 좁혀 좁디좁은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면 거기에 새로운 생각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재촉하지 말고 복잡한 세상을 직접 몸으로 부딪히게 하는 방법이 낫다.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