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손에 든 인류 최대의 적(enemy)은 주의 분산입니다. 주의(注意)란 어떤 한 곳이나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이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에도 주의 분산은 계속 문제가 되어 왔는데 스마트폰은 이제 인체의 일부처럼 사용되면서 차분하게 뭔가 한 가지에 집중력을 발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이런 주의 분산을 막아주는 최고의 효과를 제공해 줍니다. 적어도 독서하는 시간만큼은 스마트폰을 꺼두거나 멀리하고 잡념을 떨쳐버리고 독서에 집중해야 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습관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분명히 독서는 주의 집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이런 습관을 어릴 적부터 갖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주의 분산은 계속해서 문제가 됩니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면 100세 시대에 자신만의 평생직업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시대를 읽고 세대 차이를 극복하며 지혜롭게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독서하는 사람의 눈에는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이 그저 안타까워 보이지만 반대로 독서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독서하는 사람이 답답해 보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하루 종일 뉴스에 눈과 귀가 모두 쏠려 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와 아프간 사태 등 떠돌아다니는 많은 뉴스를 두루 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만 돌게 됩니다. 당연히 생각의 중심도 잡지 못해 허둥지둥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그나마 학교 교사나 부모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성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주의 분산을 경고하고 바꾸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싫어합니다. 자신의 자유의지가 침해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장점은 다양한 저자들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성격도 차분해지고 매사 서두르지 않습니다. 독서를 통해 지혜의 샘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스마트폰을 위시한 인공지능이 판을 쳐도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을 담금질한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독서에는 완성이란 없습니다.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대장간에서 쇠를 다루듯 연단하게 됩니다.
주의 분산의 심각성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분산이 계속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독서의 목적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의 분산을 막아주는 역할이 빠질 리 없습니다. 시대와 문화가 우리를 집중하지 못하도록 온갖 것들로 앞다투어 유혹합니다. 시대와 문화에 그렇다고 대책 없이 동화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함에 이를 것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힘차게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는 의지와 노력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주의 분산을 막아주는 독서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궁금한 게 많아도 인내하는 힘이 있으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