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말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배우자나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더 자주 듣게 된다. 아무리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쉽게 무너진다.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마이동풍 스타일도 곤란하지만 반대로 남의 말을 너무 잘 듣는 팔랑귀는 더 문제다. 결국은 어떻게 균형 감각을 갖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이 균형 감각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어서 쉽지만은 않다. 새삼 필자의 가친이 수십년 간 우리 부부에게 하신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부부간에 서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살아라.” 그냥 스쳐 지나칠 수 있는 말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주 심각하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전 친구 S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매번 그의 부인이 무슨 말을 하면 일단 “네,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단다. 그런 후 곰곰히 생각해 보고 부인의 말에 일리가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 버린단다. 부부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간 후 그렇게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해석이다. 한편 우습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오래 전 첫 직장에서 일할 때 일본산 컴퓨터를 메인으로 사용해야 해서 업무상 가끔 일본인들과 만났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주 하는 “와까리마시다.”라는 말은 상대의 말을 접수했다는 뜻이며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알았습니다.”라고 하면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가. 상대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지만 부정적인 말은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일단 접수하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본 후에 다음 액션으로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에서 언급한 S도 부인과 거의 40년을 살면서 엄청난 트러블을 서로 겪었을 것이다. 지혜로운 말과 생각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혼자서 모든 사리 판단을 매번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없는 갈등을 반복하면서 나름대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무시하려면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
평생 긍정적인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다. 간혹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 흔들리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그 말을 접수한 후 조용히 심사숙고하는 가운데 판단력과 지혜를 발휘해서 결단해야 한다. 무시한다는 말도 잘못 이해하면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상대가 받아들이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들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욱 조심해서 대화해야 한다. 큰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그냥 지나치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은 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지혜로운 말하기는 중요하다. 그리고 노력하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