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비즈니스맨이며 강연가이다. 책을 여러권 썼고 매년 200회 이상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한다. 유튜브 강연 조회수도 꽤 많다. K가 수년 전 필자에게 풀어놓은 웃픈 이야기가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는데 일찌감치 독서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말 고르고 골라 가끔씩 책을 사서 20대 아들에게 선물했다. 제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정성껏 책을 골라 아들에게 주었건만 아들의 반응은 아빠의 기대와는 달리 아빠가 추천하는 책에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독서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하는 말, “선배가 추천한 책인데 너무 좋아요.”라고 했단다. 아빠로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이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필자에게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필자 역시 다르지 않다. 나이 들어서 어쩌다 겨우 독서에 필이 꽂힌 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두 아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독서의 참 의미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수시로 책을 권했지만 K의 아들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이제 와서 큰 아들이 결혼하고 네 살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가끔 필자가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책을 선물하면 고맙다고 꼬박꼬박 인사는 한다. 물론 지금도 책을 제대로 읽는지는 알지 못한다. 직장에 다니면 젊어서는 주로 전공이나 영어 서적을 읽는다. 승진도 해야 하고 맡은 분야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다. 그 때에는 시간이 흘러 나중에 경영자로서 리더십을 갖거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대체로 우리 국민은 지능 지수가 높아 누구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독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으면 독서의 습관을 가지기 어렵다. 자식에게 독서하라고 권하는 부모가 정작 독서하지 않으면 그들이 누구를 본받으랴.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 초등학교부터 벌써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입시 위주의 공부가 시작된다. 독서도 입시 공부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독서의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수가 없다. 입시 지옥을 벗어나 이윽고 대학에 입학하면 해방감에 사로 잡혀 놀고 먹고 즐기는 데 온 힘을 쏟으니 여전히 독서와는 담을 쌓고 지낸다. 성인이 되어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당장 독서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절실함이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독서하지 않는다고 누가 나무라지도 않고 그냥 직장에 다니거나 돈을 벌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서에 매달릴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필자도 50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서의 참 의미를 깨닫고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넓고 깊은 독서의 바다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오히려 독서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10여년 전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온 국민이 유리감옥에 얼굴을 파묻고 허우적 거리고 있다. 지하철에서도 독서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드라마 그리고 오락물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죽이는데 열중하고 있다. 독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여기저기 많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지금이야말로 세상을 독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양분할 수도 있겠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독서하는 사람의 경쟁력은 저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독서하지 않음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독서에 매진해서 확실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