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보다는 ‘따로’

따로는 순수한 우리말로 한데 섞이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혼자 떨어져서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역시 순수 우리말로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에 익숙해 있지만 우리나라 국어학자 이어령 교수는 이를 한국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랍니다. 우리말에는 음양이 같이 있는데 따로의 짝패는 서로이지 같이가 아니라는군요. 따로와 서로는 독립주의와 상호주의가 묻어 있는 말입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따로 그리고 서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윈윈(win-win) 전략을 위해서는 따로와 서로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과 사물, 심지어 아날로그와 디지털도 따로와 서로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따로는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둑에서도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즉 내가 두 집을 짓고 안전하게 살아난 후에 적을 친다는 뜻을 가진 용어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입지를 어느 정도 세운 후에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방법이 바람직한데 간혹 순서를 바꿔 먼저 연결부터 꾀하다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기브앤테이크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자신의 역량을 먼저 보여주면서 상대와의 협업을 시도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을 했거나 아직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은 분들이 이런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는 직장에서 개인보다 팀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팀이나 조직보다 개인이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여럿이 모여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먼저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밝히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일의 중복과 누락을 피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가 확실하지도 않은 가운데 일단 일을 먼저 시작합니다. 일을 하면서 중간에 조율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막상 어떤 일이든 일을 하다보면 디테일에서 서로의 갈등이 표출됩니다. 그제서야 역할과 책임을 따져보지만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든 갈등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크든 작든 그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 했지만 따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 사람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혼자서 여러가지 상황에 봉착했을 때 해결책을 찾으려는 좌충우돌 방식의 노력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자생력을 갖게 됩니다. 따로에서 자생력을 갖추면 서로가 되어도 거뜬히 문제를 만날 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서로의 신뢰를 쌓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축적되면 따로보다는 모여서 서로가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따로 다음이 서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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