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能力主義,meritocracy)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워낙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능력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의 문제가 있고 연령과 경험을 경시하게 되므로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능력주의는 1950년 미국의 고등교육의 능력주의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미국의 소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빅3 아이비리그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사립기숙사 졸업 여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 학비를 낼 재력이 되느냐 등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 총장이며 2차 세계대전의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James Bryant Conant)는 명문대를 능력주의적 기관으로 보고 그 목표는 ‘가장 재능 있는 학생을 배경 불문하고 훈련시켜 사회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무자비한 능력주의의 덫을 해체하면서 과연 능력주의는 공정하게 작동하는지,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 능력주의는 워낙 넓게 확대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도 감히 조금의 의심도 갖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능력주의 역사도 그리 길지 않으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최근 불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의 영향으로 근간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능력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탐욕과도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와 함께 계속해서 운명을 같이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능력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한 나머지 그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 개인이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의 전반적인 환경이 그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방향으로 서로가 이해한다면 탐욕의 그늘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부모와 기성세대가 뼛속 깊이 새기고 있는 바로 이 능력주의가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능지수가 뛰어나고 암기력이 좋으며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잘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와 국가의 돌봄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깨달음에 이를 때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미래 사회는 능력주의보다 적응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시대에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끈기가 요구됩니다. 혼자의 힘으로 안간힘을 쓰기 보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타주의 사고방식이 능력주의 함정을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