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不條理, absurdity)는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의 반대말인 조리(條理)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일이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부조리한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상은 조리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부르짖습니다. 또 하나의 부류는 세상이 으레 부조리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바라는 대로 세상이 변화했으면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평과 분노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납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다고 하며 남을 헐뜯고 지적질을 서슴지 않습니다. 평소 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반감을 품습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를 적으로 간주합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정치권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정치가는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협상력이 있어야 합니다. 매사 흑백 논리로 세상을 편가르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도무지 없습니다. 상대가 부조리한 방법을 사용하면 참지 못합니다. 상대편이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뭔가를 먼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생각하면 부조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 철학을 이끌었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부조리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늙어갔습니다. 젊을 때 보다 나이 들면 부조리를 받아들이기가 비교적 쉬워집니다. 폭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부조리에 쉽게 반응하며 저항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의 경험과 함께 지혜의 문이 차츰 열리며 시야가 넓어집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안목이 심하게 좁아져서 부조리에 우스꽝스럽게 반응하며 스타일을 구깁니다. 항상 세상은 부조리하다는 전제를 깔고 세상을 바라보면 눈과 마음이 훨씬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부조리를 받아들이면 융통성이 생깁니다. 여유가 생겨 매사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적응하며 살려고 애를 씁니다. 타협도 힘이 없으면 못합니다.
부조리를 받아들이면 세상의 이치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보다 부조리를 받아들이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과거를 받아들이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요구와 욕구는 다릅니다. 흔히 우리는 요구에 너무 치중해서 그 너머 있는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모든 부조리는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자신은 항상 옳고 합리적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은 착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상대의 욕구가 마음의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조리를 만나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조리냐 아니냐라는 판단조차 상당 부분이 주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조리는 만나면 조심스럽게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