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75억 인구가 제각기 다른 기후, 환경, 관습에 적응해 살아가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 다단한 일들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만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미리 정해 둔 프레임에 세상을 집어 넣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며 살아갑니다. 아옹다옹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도토리 키 재기를 거듭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다양하게 관찰하면서 바라볼수록 세상은 더욱 심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다양한 관점을 포기하면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이게 됩니다. 한마디로 좁은 세상만 보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관점을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요? 매사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먼저 필요합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사안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는 습관이 일찍 몸에 배게 됩니다. 자신의 잣대에 비추어 맞지 않거나 다르다고 생각하면 즉시 틀렸다고 말해 버립니다. 설령 대수롭지 않게 이런 말을 했더라도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그런 판단을 해 놓고도 정작 자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게 수십년 습관이 되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떠납니다. 나중에 이를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성급하게 판단하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성순임 감정코칭 전문강사는 감정코칭의 시작은 감정을 먼저 수용하고 그 이후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상대가 아이거나 어른이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다양한 관점을 가지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이 생길 때 지금이 바로 자기 자신의 다양성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습관이 될 때까지 훈련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필자의 경우에도 젊은날 수없이 반복한 성급한 판단과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가 많습니다. 때늦은 후회이긴 하지만 그런 경험이 지금은 약이 되어 그나마 자제력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불쑥불쑥 옛날 습관이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였던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그의 글을 통해 그러나(but)와 그럼에도(yet)라는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며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고 합니다. 존슨은 쓸 수 있는 논리라면 모조리 동원했고 논쟁을 더 재미있게 만들려고 때로는 지지하는 입장을 바꾸기도 했답니다. 이쯤 되면 조금 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계속 했습니다. 진리냐 아니냐를 가리는 극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양성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나만 옳고 모두가 틀렸다는 생각으로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과 행동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