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의 누구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런데 이 짧은 질문으로는 언뜻 정체성에 대한 대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는 누구의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마치 나의 모습 전체를 보기 위해 전신 거울을 보듯이 제삼자를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주의가 지나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은 남의 간섭을 피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노력이 우리 모두를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은 그런 사실조차 모른채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개인주의를 뛰어 넘어서 관계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완전한 이기주의 시기인 유아기를 벗어나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개인주의가 차츰 생겨납니다. 인생의 몇 가지 필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욕구는 필요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고 부모의 슬하는 떠나 독립하고 사회 생활을 이루고 나아가 뭔가 족적을 남기는 모든 과정에서 개인주의는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면 여전히 성숙한 인격체가 되지 못하고 자신의 탐욕을 지속적으로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일상의 뉴스를 통해 종종 봅니다. 누가 봐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버젓이 우리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관계주의는 이런 극단적인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를 뛰어 넘게 합니다. 매사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선행됩니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꾀하는 안목이 생겨납니다. 나중에 공동체의 유익이 생기면 개인의 이익도 덩달아 덤으로 얻게 됩니다. 당장 눈 앞의 자신의 이익에 눈멀어 지속적인 공동체의 유익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과 관계의 연대와 결속이 사라지는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얽혀 버렸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우리 국민들의 공감과 협조를 보면서 그래도 아직 관계주의의 희미한 불빛을 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결코 인간은 혼자 생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것과 관계주의로 서로 의지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조금만 자신의 탐욕을 내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구하려는 시도는 관계주의의 출발점입니다. 관계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동시에 보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관계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개인주의자나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시작해 관계주의를 회복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개인주의라는 허울 속에 비치는 탐욕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는 역시 관계주의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말고 나는 누구의 누구인가는 물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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