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은 유독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다짜고짜 나이부터 물어 본다. 그리고 한살이라도 자신보다 어리면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라고 강요한다. 더 가깝게 지내려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심하다. 그를 20년 이상 만났지만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지금 60대 후반이다. 지난 날 나이는 권력이었다. 남존여비 사상과 더불어 나이 권력은 꽤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이었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 누군가와 싸움이 붙었을 때 힘과 논리에 밀리면 나중에는 결국 나이를 들고 나온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으니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라는 투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건 시쳇말로 씨알도 안 먹힌다. 나이를 들먹 일수록 꼰대로 몰아부친다. 최근에는 이런 나이 권력이 많이 사라진듯 보이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반대로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꼰대 취급하는 젊은이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 나이 든 사람들도 한 때는 모두 어렸고 젊었었다. 세월은 공평하게 모두에게 나이를 먹인다. 젊을 때 나이 든 사람에게 꼰대라고 놀리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나이들면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더 투덜댄다. 혹독한 시어머니 아래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 표독스러운 시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는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룬다. 세대가 다른 세대와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찬다. 나이를 뛰어넘는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뛰어 넘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인가? 여기서도 어김없이 이타심이 등장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 나이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가는 세월 붙잡을 수는 없다. 젊은이는 패기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나이 들면 지혜롭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 나이 든 사람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의 실수를 용서하고 감싸주려는 포용력이 필요하고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나이가 들 것임을 명심하고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요구된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으로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 MZ세대는 1030대를 가리킨다. 밀레니엄과 Z세대를 줄여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매우 합리적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볼 때는 버릇없는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결이 있다. 누구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비합리적인 말이나 태도를 보이면 즉각 반응을 보인다. 버릇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간혹 그들이 잘 알지 못해서 당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지 차근차근 알려주면 차츰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제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에 걸맞는 국민성이 뒤따라야 한다. 필자는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90년 역사를 가진 부동산자산관리협회((IREM)의 인적자원관리(HRD) 교수를 10년 정도 한 적이 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철저하게 직원을 채용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 인종, 종교, 결혼유무, 자녀유무 등을 법적으로 묻지 못하게 되어 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나이 묻는 습관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나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더 이상 나이를 묻지 말고 서로 배려하며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