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많은 건가요?”, “뭐니뭐니해도 돈을 벌어야죠.” “죽을 사람은 어느 정도 죽어야죠.” 이게 A의 페이스북 댓글이다. 자신의 타임라인에는 거의 글을 올리지 않으면서 부지런히 다른 사람의 게시글에 와서는 생뚱맞은 댓글을 달곤 한다. 페이스북 친구도 별로 없고 아예 어떤 친구가 있는지 리스트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왜 자신이 친구 요청을 하면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지 답답해 한다. 인정이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인정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인정 받으려면 먼저 인정해야 하는 함은 잘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쓴다. 성취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은 더욱 짙다. 인정받는 것은 주목받는 것이다. 노력해서 성공하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진정한 인정은 노력이 아니라 먼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남을 인정하는 태도와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진심으로 인정하면 고스란히 되돌아 온다. 그런데 자신은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결국 자신이 주목받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주목하고 인정하는 행위로 인해 그들이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결과를 가져 온다.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조건 없이 먼저 인정해 주는 배려는 아름답다. 자신이 하는 일은 좋고 남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좋지 않다는 사고를 가지면 인정하기 어렵다. 남을 인정하는지 아닌지는 몇번 만나고 대화를 해보면 금새 나타난다. 문제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남을 인정하는데는 인색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는데 정작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알아채지 못한다. 비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친구의 관계도 그렇다. 자신에게 어떤 사람은 지인으로써 열 손가락 안에 꼽지만 반대로 그 사람의 지인으로써는 자신이 리스트에 조차 올려져 있지 않기도 한다. 이런 걸 이해한다면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4년간 이어온 A와의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결국 끊었다. 실은 1년 전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자연스럽게 그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고 지냈다. 친구 삭제를 하고 나서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그런 댓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낫다. A도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고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어찌 하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결국 유유상종이다. 꺼림칙하게 마음에 두고 어정쩡한 태도로 지내기 보다 그냥 안 보고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EBS 펭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도움이 안 되니 긍정적인 사람들과 이야기하세요.” 아마 A는 필자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고의 진리는 인정받고 싶다면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