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펭수의 시대

<출판사 서평>

10살 연습생 자이언트 펭귄은 어떻게 우주대스타가 됐을까? 안티 꼰대, 젠더 뉴트럴, 보디 포지티브, 서스테이너블, 느슨한 연대…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펭년배’들의 가치관과 욕망을 파헤치다!

펭수 신원이 어떻게 되냐고요? 제발 눈치 좀 챙기세요

“제가 진지하게 그럼 펭수는 대체 누구냐고 묻자, 저와 통화한 외교부 관계자가 직접 신원을 확인했는데 남극에서 온 10살짜리 펭귄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11월 〈JTBC 뉴스룸〉에서 ‘펭수 신원 확인’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다. ‘2019 한ㆍ아세안정상회의’ 홍보 영상 촬영을 위해 외교부에 방문한 펭수가 신원 확인 규정을 위반한 채 정부 청사에 출입했다고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지적했고, 여기에 대해 외교부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는 내용이었다. ‘펭수는 규정에 따라 청사에 출입했다’고 보도하는 담당 기자에게 손석희 앵커가 ‘그렇다면 외교부 사람들은 저 펭귄 탈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질문했는데, 이것을 두고 시청자들이 보인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JTBC 뉴스〉 유튜브 채널에 “눈치 챙겨, 손석희.”, “펭수는 펭수인데 왜 자꾸 사람이라고 하죠? 선 넘지 마세요!”, “펭수를 건드리는 자, 어른이들의 무게를 견뎌라.”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펭수를 재단하려 하지 말라!” 등 펭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600여 건 가까이 달린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펭수는 단순한 펭귄 탈 인형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펭수 안에 사람이 있고 그의 신원은 누구다’ 하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 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펭수가 진짜 열 살인지, 수컷인지 암컷인지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여긴다. 펭수 스스로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열 살 펭귄’이라고 밝혔음에도 그것을 다시 파헤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며,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분법적 구도 내에서 모든 것을 규정하려고 하는 편협함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무례한 거대 펭귄과 사랑에 빠졌다”_BBC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펭년배’들의 가치관과 욕망을 파헤치다!

펭수는 우리와 함께 2019년 그리고 2020년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펭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이 되고, 수많은 방송사와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펭수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지상파와 유튜브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문 플랫폼 확장의 아이콘이자 EBSㆍMBCㆍKBSㆍSBS 등 온갖 방송사를 넘나드는 시청률 보증수표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콘텐츠 비즈니스를 이끄는 BTS와 송가인을 제치고 ‘2019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KGC인삼공사, 동원F&B, LG생활건강, 빙그레, 코카콜라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들과 광고 계약을 맺고 컬래버레이션하는 제품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켜 “요즘 한국 내수는 펭수가 살린다.”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가 구독자 200만 명을 넘은 2020년 1월 말을 기준으로 펭수의 1년 광고 모델료는 최소 7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무엇이 열 살짜리 펭귄 한 마리에 우리가 이토록 열광하도록 만든 것일까? 펭수는 뽀로로, 라이언, BT21 같은 기존 캐릭터들처럼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펭수는 발언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캐릭터다. 펭수가 사장의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고 “잔소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 가도 될까요? 저 퇴근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신이 날 리 없잖아.” 같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은 직장인들, 특히 2030세대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위계관계에 억눌려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펭수가 대신해 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펭수의 어록 중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취향은 존중해 주길 부탁해.”,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부정적인 사람들은 도움이 안 되니 긍정적인 사람들과 이야기하세요.” 등은 2030 밀레니얼 세대의 인생관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무엇이든 잘해야 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우위에 서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기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성공을 지향하며,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가식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런 말들을 유행어처럼 퍼뜨리고 있다.

안티 꼰대, 젠더 뉴트럴, 보디 포지티브, 서스테이너블, 느슨한 연대…
펭수 신드롬은 세대와 시대가 보내는 진화의 시그널이다

펭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세심하게 반영해 만든 입체적 캐릭터다. 2019년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굉장히 높았던 해다. 직장 내 세대 갈등과 꼰대 논쟁이 거셌고, 사회 전반에서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차이, 갈등을 주목하던 시기였다. 바로 이런 세대 갈등과 꼰대 논쟁을 건드리고 나선 것이 〈자이언트 펭TV〉의 ‘EBS 아이돌 육상대회’였고, 이것을 기점으로 펭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급속도로 커졌다. 그리고 제작진은 젠더 뉴트럴, 보디 포지티브, 느슨한 연대, 환경과 기후변화 등 더욱 다양한 트렌드적 요소를 펭수 세계관에 녹여내며 펭수를 더욱 진화시켜 가고 있다. 펭수가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외모 논쟁 앞에서도 스스로를 완벽한 외모라고 추켜 세우며, ‘휴일에 연락하면 지옥간다’면서 불필요한 업무 시간 외 연락과 사생활 간섭을 거부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의 트렌드와 너무도 닮아 있다.
펭수가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진화해 온 과정은 밀레니얼 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대한민국이 진화해 온 과정의 압축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는 세대인 2030세대가 펭수를 선택했고, 펭수는 이들의 가치관 그리고 욕망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30세대뿐 아니라 40대 이상, 기성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까지도 펭수의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 세대를 넘어 ‘시대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펭수 신드롬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숙제가 되었다. 이유 없는 성공은 없고, 이 이유를 아는 것이 곧 우리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펭수의 시대≫를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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