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두렵다는 말은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한 상태를 뜻한다. 두려움이란 두려운 느낌이다. 두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 힘들어 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연일 뉴스에 나오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보고 들으며 내심 두려움을 삼키고 있다. 물리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하니 두문불출 집이나 사무실에서 꼼짝달싹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요즘처럼 인류가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꺼번에 떨어본 적이 없다. 물론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전세계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편리함이 좋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인간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죽는다. 그러나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염병이 창궐해서 자신이 확진자로 판명되면 억울하게 찍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죽을까봐 노심초사 두려워한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준비해 둔 사람은 비교적 두려움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덜 느낀다는 말이다. 두려움은 신뢰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서로 믿지 못할 때 두려움이 생긴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면 사재기를 하고 두려움에 떤다. 평소 비관론자들은 두려움이란 시한 폭탄을 안고 다닌다. 대화를 할 때도 처음에는 밝은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대화의 마지막은 어두움으로 끝을 맺는다. 

두려움이 느낌이라면 얼마든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있어야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장 큰 두려움이라는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평소 온갖 두려움과 더불어 살아간다. 경제가 어려우면 이러다 파산할까봐 두려워하고 취직이 안 되면 이러다 영원히 무직자로 남을까봐 전전긍긍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장차 어떻게 키울까 염려하고 커서는 무엇이 될까 근심한다. 적당한 두려움은 동기유발에 자극제가 되지만 지나친 두려움은 우리의 정신까지 황폐하게 한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불완전한 인간은 평생 걱정과 근심을 온 몸에 지니고 살아간다.

결국 두려움은 느낌이며 이는 우리 마음속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 다스리기는 가까운 배우자나 부모 형제도 도와주기 어렵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는 두려움의 결과물이다. 긍정 마인드를 평소에 가지려고 애쓴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눈을 돌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타심을 갖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이 생기면 두려움은 멀리 달아난다.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면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지만 존재 자체를 감사하며 살면 영혼까지 자유를 누린다. 감사하는 마음은 두려움의 천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어떤 힘든 상황이 닥쳐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무한 긍정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출처: 오늘경제 http://startup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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