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려면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거친 음식이란 자연에서 자란 채소와 산나물, 현미, 호밀 등의 잡곡류 같은 입자가 거칠고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말한다. 어린아이가 갓 태어나서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만 점점 자라면서 거친 음식에 적응하면서 위장이 튼튼해진다. 독서도 다를바 없다. 거친 독서가 부드러운 독서보다 내공을 쌓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면에서 편리함이 트렌드가 되었다. 최근 윌라, 아마존, 리디셀렉트 등 오디오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 14일 정도 무료 체험을 하게 한 후 월정액을 내면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고 언제 어디서나 이어폰을 끼고 편리하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웹툰과 오디오북을 보고 듣는 젊은이들을 자주 본다.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출판사는 주로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을 어러 편의 오디오북으로 나누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유혹하고 있다. 유튜브에 책 읽어주는 크리에이터도 부쩍 늘었다. 카카오 페이지에는 수백권의 고전을 5분 짜리로 줄여 보여주는 서비스도 히트를 친다. 오디오북이든 유튜브든 많은 책을 편하게 듣고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 오디오북은 우선 책을 들으면서 부분 필사하거나 메모 하기가 어렵다. 그냥 쓱 지나가면서 줄거리 정도를 파악하는데 그친다면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없다.
독서는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읽으면서 또는 읽은 후 사색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쉽게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색이라는 프로세스만으로도 독서의 진수를 맛보기 어렵다. 그래서 독서 후 글쓰기는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보고 들으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쉽게 독서를 한다면 나중에 뭐가 남을까를 고심해 봐야 한다. 월정액을 내고 독서하는 방법이 억지로라도 독서를 하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종이 냄새를 맡으며 하는 전통적인 독서방법을 결코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종이책을 읽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때로는 입으로 소리내어 읽기도 하고 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생각하는 독서가 가능하다.
아무리 디지털 문명이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도 진정한 행복과 가치는 아날로그를 뛰어 넘지 못한다. 디지털 독서가 아날로그 독서를 결코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상업용으로 디지털 독서의 선두주자가 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다른 분야와 같이 그냥 독서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독서 프로슈머가 될 것인가. 프로슈머는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를 말한다. 편리함은 좋은 것이다. 편리한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세가 되고 있지만 바로 여기서 독서의 내공이 크게 갈라진다. 편리함을 쫓아 갈 것인가 아니면 우직하게 거친 독서로 승부할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