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躁急)하다는 말은 참을성이 없어 몹시 급하다는 뜻입니다. 스피드(speed)가 경쟁력이라고 하는 21세기를 살면서 빠른 것은 차별화를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빨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지나치게 빠르면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날로그입니다. 태어나고 먹고 마시고 만나고 헤어지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것들은 아날로그의 삶입니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편의성은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은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직항으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까지 13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꽤 먼 길입니다. 멀기도 하지만 그곳은 우리와는 문화와 생활 풍습이 많이 달랐습니다. 40일가량 스페인에서 생활하면서 나와 우리가 평소 너무 조급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순례길을 나서서 두어 시간을 걷고 나면 조그만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에는 순례자들을 위해 바르(Bar)가 있습니다. 커피와 빵 그리고 사과와 바나나 등을 파는 그리 크지 않은 가게입니다. 바르에 도착하면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씩 주문을 받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카페라떼를 할 것인지 아메리카노를 할 것인지 묻습니다. 그러고는 커피 머신을 작동합니다.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면 오렌지를 통째로 올려 즙을 짭니다. 빵을 주문하면 전자레인지에 데워 옵니다. 주문이 끝나면 계산기를 두드려 얼마인지 알려주고 순례자는 지폐나 동전을 하나씩 세며 계산을 마칩니다. 모든 주문이 끝나면 이제 다음 순례자 차례가 돌아옵니다. 가끔 동작이 빠른 주인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기다리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신속하게 주문하고 진동벨을 주거나 요즘은 키오스크(kiosk)로 주문을 합니다. 스페인에서 며칠 지나면서부터 어느새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도 하고 바르 내부를 구경도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도심이든 시골이든 횡단보도를 만나면 무조건 차가 섭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차가 우선입니다. 순례길을 걷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 식당 테이블에는 직원을 부르는 벨이 없습니다. 아무도 소리쳐서 직원을 호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앉아서 기다리면 순서가 되면 직원이 찾아옵니다. 네 사람이 첫 번째 코스에서 나온 식사를 하다가 한 사람의 식사가 느리면 직원은 기다립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식사가 끝나야 다음 식사가 나옵니다.
2015년부터 제주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스탬프를 찍으며 426km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그 이전에 주로 관광지를 가거나 골프장에 다닐 때는 승용차나 버스로 다녔기 때문에 제주의 속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 올레길을 두 발로 걸으며 제주의 역사, 문화, 설화 등 많은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느리면 보이고 멈추면 더 많이 보입니다. 빠른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교훈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창직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창직 7계명을 만들어 강연을 할 때마다 소개합니다. 그중 두 번째가 조급하지 말라입니다. 조급하면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되 행동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하라는 뜻입니다. 가끔 자신이 너무 조급하지 않은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조급하면 많은 것을 놓칩니다.
‘산티아고 순례 완보’ 축하드립니다.
더구나 ‘느림의 미학’을 체득하심에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해 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성취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