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문장이 다시 이어지는 시간
책상 위에 지난주에 다 읽은 책 한 권을 다시 올려놓습니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먼저 스마트폰의 구글 킵(keep)을 엽니다. 처음 읽을 때 말로 남겨 둔 기록이 페이지 번호와 함께 쌓여 있습니다. 그 기록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처음에는 지나쳤던 문장이 어느 순간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머지않아 필자의 칼럼이 되고, 강의가 되고, 책 원고의 한 대목이 됩니다.
재독(再讀, rereading)은 글이나 책을 다시 읽는 일입니다. 쉬운 동화라도 한 번 읽어서 저자의 생각을 모두 붙잡기는 어렵습니다. 처음 읽을 때 깨달음이 온 부분과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표시해 두고, 다시 읽으며 그 뜻을 깨닫는 과정이 재독입니다.
창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재독은 특별한 힘을 줍니다. 창직은 지나온 경험과 지식을 새롭게 해석해 세상에 없던 일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해석은 같은 것을 다시 들여다볼 때 생깁니다. 다시 읽는 힘이 곧 새로운 일을 여는 힘입니다. 재독을 창직에 활용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책을 다시 읽는 눈이 경력을 다시 읽게 합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가기 바쁩니다. 다시 읽으면 결말을 알고 있기에 앞부분의 문장이 어디를 향하는지 보이고, 처음에 놓친 대목이 의미를 드러냅니다. 경력도 이와 같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눈앞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그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퇴직이나 전직을 앞두고 지나온 경력을 다시 읽으면, 당시에는 업무의 일부로 여겼던 일들 가운데 유난히 잘했던 일과 몰입했던 순간이 보입니다. 창직의 씨앗은 그 자리에 묻혀 있습니다.
책을 다시 읽어 본 사람은 경력을 다시 읽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처음의 해석에 머물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 방법은 이렇습니다. 지난 직장 생활을 책의 목차처럼 몇 개의 장으로 나누어 적어 보십시오. 장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일 하나를 적고, 며칠 뒤 그 목차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두 번째 읽을 때 반복해서 눈에 걸리는 일이 창직의 출발점입니다.
둘째, 재독하며 남긴 기록이 창직의 콘텐츠가 됩니다
창직으로 1인 기업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콘텐츠입니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가르칠지가 분명해야 고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재독하며 남긴 기록은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됩니다.
필자는 책에 밑줄을 긋지 않습니다. 대신 구글 킵에 해당 페이지와 문장을 말로 기록해 둡니다. 깨달음이 온 문장, 뜻이 잡히지 않는 문장, 코칭 현장의 경험과 연결되는 문장을 그 자리에서 남깁니다. 다시 읽을 때는 그 기록이 지도가 되고, 다시 읽으며 덧붙인 생각은 글의 재료가 됩니다. 칼럼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 기록들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창고가 되어 줍니다.
도구는 각자 편한 것을 고르면 됩니다. 페이지와 문장, 그리고 그 문장이 자신의 경험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마디를 함께 적어 두십시오. 연결의 한마디가 쌓이면 자신만의 관점이 되고, 그 관점이 창직의 모티브가 됩니다.
셋째, 같은 책을 거듭 읽는 깊이가 전문성이 됩니다
AI가 책 한 권을 몇 초 만에 요약해 주는 시대입니다. 요약된 정보는 누구나 얻을 수 있기에 그 자체로는 가치가 낮습니다. 창직으로 새로운 일을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분야의 관련된 책을 거듭 읽으며 다져진 판단입니다. 고객이 값을 치르는 대상은 정보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풀어 주는 그 판단입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읽는 법을 배우는 데 80년을 바쳤는데도 아직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깊이 읽는 일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창직의 전문성도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자기 분야의 책 몇 권을 정해 두고 해마다 다시 읽는 사람은, 그사이 쌓인 경험만큼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그 발견이 쌓여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가 됩니다.
실천 방법은 이렇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곁에 두고 거듭 읽을 책 세 권을 고르십시오. 한 해에 한 번씩 다시 읽고, 읽을 때마다 지난번과 달라진 해석을 한 줄로 기록해 두십시오.
다시, 책이 새로운 일을 여는 시간
책을 다시 읽는 눈으로 경력을 다시 읽고, 재독의 기록을 창직의 콘텐츠로 키우며, 같은 책을 거듭 읽는 깊이로 전문성을 다지는 것. 이 세 가지가 쌓일 때 재독은 창직의 힘이 됩니다.
다시 책상 위의 그 책을 떠올립니다. 구글 킵의 기록을 따라 펼친 페이지에서, 처음에는 지나쳤던 문장이 이번에는 분명한 뜻으로 다가옵니다. 필자는 그렇게 다시 읽은 문장들을 칼럼에 녹이고, 강의에서 꺼내 쓰고, 책 원고에 옮겨 담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조금씩 발전하고 성장하는 자신을 피부로 느낍니다. 새로운 일은 먼 곳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미 읽은 책과 이미 살아온 경력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읽는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책장에서 지난번에 덮어 둔 책 한 권을 다시 꺼내 보십시오. 그 책이 다음 일을 열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