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너머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에게 낯선 문법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배려이고, 거리를 두는 것이 예의인 시대였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창문을 열고, 줌(Zoom) 화면 앞에 앉아 우리는 수년을 그렇게 버텼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물러간 자리에 이번엔 AI가 성큼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고백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메신저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온라인으로 배우고, 온라인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 이제는 일상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비대면의 흐름 속에서도 굳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줌(zoom)으로 수백 명이 학습하는 미래학당은 온라인 수업에 머물지 않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엽니다. 그리고 서울 중심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기 쉬운 지역 회원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독서경영포럼은 매달 한 번,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필자가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낯선 사람 만나기’는 강남역 근처 던킨 원더스에서 브런치 타임에, 아무런 이해관계없는 낯선 이들끼리 마주 앉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온 분들의 한결같은 소감은 이렇습니다. “참 잘 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오프라인 만남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왜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만나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신뢰는 온라인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인간의 뇌는 수십만 년에 걸쳐 얼굴을 읽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상대방의 눈빛, 미세한 표정의 떨림, 목소리의 온도, 악수할 때 느껴지는 손의 온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전달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사람을 믿어도 될지’를 판단합니다. 화면 속 얼굴은 그 정보의 대부분을 잘라냅니다. 픽셀로 전송된 미소는 진심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낯선 사람 만나기에 참여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직업도, 배경도, 이해관계도 전혀 다른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스크린 뒤에서는 결코 생기지 않는 무언가가 흐릅니다. 그것이 신뢰의 씨앗입니다. 비즈니스든, 우정이든, 협업이든 깊은 관계는 결국 오프라인의 순간에서 싹을 틔웁니다. 온라인은 그 신뢰를 유지하는 도구일 수 있지만, 처음 씨앗을 심는 곳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우연한 만남이 삶을 바꿉니다
온라인의 세계는 철저히 알고리즘이 지배합니다. 내가 관심 가질 만한 것만 보여주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만 연결시켜 줍니다. 편리하지만 위험한 구조입니다.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자리에서는 예상이 빗나갑니다. 독서 모임에서 전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관점을 얻고, 지방에서 열린 미래학당 오프라인 모임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오랫동안 찾던 협업 파트너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우연은 설계되지 않기에 가능합니다. 알고리즘은 우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 모이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화학반응이 시작됩니다. 삶의 전환점은 종종 그런 예상 밖의 테이블에서 찾아옵니다.
셋째, 몸으로 함께하는 경험이 공동체를 만듭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같은 커피 향을 맡고, 같은 웃음을 나누고, 말이 끊긴 자리의 침묵조차 함께 견디는 것. 그 경험이 쌓일 때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줌으로 매주 만나는 사람들이 직접 한자리에 모였을 때 전혀 다른 감각이 깨어난다고 말합니다. 화면 속에서 알던 사람이 실제로는 더 따뜻하고, 더 입체적이고, 더 복잡한 존재임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고, 그 이해가 공동체의 뿌리를 단단하게 합니다. 메신저로 유지되는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만, 몸으로 함께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대면 시대일수록, 오프라인 만남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지막 닻이 됩니다.
화면을 닫고, 문을 여십시오
필자는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잠시 다니러 온 ROTC 15기 동기 조철희를 만났습니다. 지난해부터 종종 줌 미팅에서 만나긴 했지만 오프라인 만남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반가워서 뜨겁게 허깅을 했습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만남이 주는 기쁨은 가슴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AI는 갈수록 능숙해질 것입니다. 온라인은 갈수록 편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술도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기를 나누는 순간을 복제하지는 못합니다. 신뢰는 눈을 마주칠 때 자라고, 기회는 예상 밖의 자리에서 찾아오며, 공동체는 함께한 시간 위에 세워집니다.
비대면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지금이야말로, 불편함을 무릅쓰고 일어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화면 너머가 아닌, 바로 눈앞의 사람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그 한 번의 만남이 당신의 삶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