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일상과 업무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 앞에 서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단 몇 초 만에 수준급의 문장을 작성하고, 복잡한 코드를 짜며, 전문가 수준의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압도적인 기술력을 목도하며 많은 이들이 달콤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제 지식은 검색할 필요도 없고, 기본기를 닦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AI가 다 해주니까.”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기본기’가 없는 사람과 단단한 기본기를 갖춘 사람 사이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생각해 주거나 결핍된 능력을 채워주는 ‘보청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역량을 수십, 수백 배로 키워주는 ‘증폭기’이기 때문입니다. 0에 어떤 숫자를 곱해도 0이듯이,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의 AI 활용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기술 습득보다 ‘기본으로의 회귀’를 먼저 고민해야 할 네 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살펴봅니다.
첫째, 기본이 있어야 AI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AI와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프롬프트(질문)’의 수준은 사용자의 사고력과 비례합니다. 흔히 AI 활용 능력을 기술적인 문제로 치부하지만, 사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논리적 사고와 명확한 언어 구사 능력에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AI에게 피상적이고 모호한 질문밖에 던지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돌아오는 답변 역시 뻔하고 평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해당 분야의 기본 원리와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AI에게 구체적인 제약 조건을 설정하고, 다각도의 관점을 제시하며, 답변의 오류(할루시네이션)를 정확히 잡아냅니다. 결국 AI라는 거대한 엔진을 돌리는 연료는 사용자가 평소 쌓아온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정의 능력이라는 ‘기본기’입니다.
둘째, 기본은 속도보다 중요한 ‘방향’을 결정합니다
AI는 생산성의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여줍니다. 과거에 한 달이 걸리던 프로젝트를 단 며칠 만에 끝내게 해 줄 만큼 강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위험한 함정이 발생합니다. 방향이 잘못된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은 목적지에서 더 빨리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기본기가 부재한 사람은 AI가 내놓는 빠른 결과물에 취해, 그것이 전체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혹은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반면 기본이 탄탄한 사람은 속도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술이 주는 편리함 뒤에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놓치지 않으며, AI가 제시한 수많은 경로 중 가장 가치 있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AI 시대의 기본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거센 기술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잡게 해주는 내비게이션입니다.
셋째, 기본은 대체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경쟁력을 보존합니다
역설적이게도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흉내 낼수록,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능력,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결단력, 그리고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고차원적인 능력은 단기 속성 교육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을 읽고 사색하며 길러진 인문학적 소양,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한 현장의 감각,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다듬어진 공감 능력이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형성됩니다. 기본을 소홀히 하고 기술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결국 AI의 하부 실행자로 전락하겠지만, 인간다운 기본기를 연마한 사람은 AI를 자신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충실한 도구로 부리게 될 것입니다.
넷째, 기본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최신 AI 기술은 내일이면 구식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어제의 전문성이 오늘의 상식이 되는 속도 또한 무시무시합니다. 이런 불확실한 환경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자산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전이 가능한 역량(Transferable Skills)’입니다.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파악하는 독해력,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는 정리 능력,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표현력은 수천 년 동안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기술의 껍데기가 아무리 바뀌어도 이 뿌리가 깊은 사람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툴이 나오면 그저 자신의 기본 역량을 투사할 새로운 창구가 생겼음을 반길 뿐입니다. 기본을 갖춘 이들에게 변화는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입니다.
마무리하며
AI 시대에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결코 기술을 멀리하고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자는 퇴보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AI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더 먼 지평선을 바라보기 위한 치열한 준비 과정입니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지만, 인간 성장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차이를 만드는 것은 화려한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깊이와 그 답변을 걸러내는 안목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전략은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가장 고전적인 ‘기본’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용기입니다. 미래를 결정짓는 주권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 위에 바로 선 당신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