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고 왔습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프랑스 길을 걸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국경 생장피에드포(Saint-Jean-Pied-de-Port)를 출발해 피레네산맥과 메세타 고원을 거쳐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34일 동안 매일 평균 23km를 걸었습니다. 순례길을 의미하는 조가비 표시와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색 화살표만 보고 걸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길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걷고 또 걸으면서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스페인 정부에서 길을 정비하고 관리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멀고 위험하고 때로는 죽임까지 당했던 그런 길이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의 인생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삶의 궤적과 닮았습니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순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전혀 누구도 다니지 않았던 생소한 길도 있습니다. 쉽고 편한 길을 누구나 선호하지만 그곳에는 호기심과 도전이 없는 길입니다. 반면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은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고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걷고 또 걸으며 자신만의 길이 생겨납니다. 이른 아침 아직 사방이 어두울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면 종종 화살표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매고는 했습니다. 길을 찾지 못하면 가던 길을 돌아와 다시 주변을 살피면 화살표가 보입니다. 늘 다니는 길은 화살표와 같은 표지판이 없어도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생기면서 다른 길을 찾아 둘러 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기회는 다른 길을 찾을 때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습관처럼 다니던 길이 아니라 생소하지만 도전 정신으로 찾아가는 길에서 종종 우리는 삶의 의미를 느끼고 기적처럼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만나기도 합니다. 올해 초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우리 곁에 나타나면서 다시금 직업 시장에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정보와 제안을 제공하는 괴물이 나타난 겁니다. 당분간 챗GPT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갭(gap)이 크게 벌어질 전망입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길이 생긴 것입니다. 이는 십수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온 이래 가장 큰 변화의 물결입니다. 그런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동안 놓쳤던 챗GPT의 업데이트를 캐치 업(catch-up)하고 있습니다.
흔히 길은 당연히 거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제주올레 아카데미 심화과정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도 쉴 새 없이 올레길을 정비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분들의 무용담을 들었습니다. 당연한 길을 없습니다. 누군가 길을 내었기 때문에 길이 있는 겁니다. 이미 난 길을 따라 편안하게 걸어 다니는 단순 소비자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종종 스스로 길을 내는 생산자로 살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며 선택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필자도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부단히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면 새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난 길을 없습니다. 남들이 모두 걸어가는 편한 길은 가기 싫습니다. 새로운 길에서 보람과 가치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 길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완주를 격하게 축하드립니다.
하루 평균 23km를 34일간 쉬지 않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과 큰 발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길(道)에는 먼저 그 길(路)을 걸어간 길(人. 역사와 문화, 신화와 설화)이 있습니다. 그 길(人)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과 대화를 나누는 나(我)를 만납니다.
我之道=내가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