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쟁(不爭)은 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쟁하라는 말은 싸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싸워서 이기거나 경쟁을 해서 승리하는 것을 성공인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경쟁하고 커서는 직장에서 승진과 연봉을 다투며 사회에서도 높은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나라들 간의 전쟁에서는 죽고 죽이는 것으로 인류의 역사는 이루어져 왔습니다. 특히 유럽권에서는 넓지 않은 영토를 둘러싸고 서로 싸워 땅을 확보하고 자원을 획득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다 심지어 30년 전쟁이나 100년 전쟁도 있었습니다. 싸움에서는 반드시 이긴 자가 있고 반대로 지는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긴 자에게는 온갖 부귀영화가 따르지만 패한 자에게는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처절한 생존권 박탈이 따랐습니다.
21세기 들어서 물론 아직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생을 목표로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즈니스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많은 직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지금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규모의 경제를 부르짖으며 M&A를 통해 이합집산이 일어나긴 하지만 대체로 경쟁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 세계 굴지의 비즈니스를 이룬 기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애플은 회사의 모토를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플의 존재 이유입니다. 현재 시가 총액이 3조 달러이면 대략 3,900조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 회사가 돈을 많은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부쟁의 원리입니다. 애플이 비록 우리는 싸우지 않겠다고 말로 선언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모토에는 이미 그런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든 기존의 기업이든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기업을 따라가는 벤치마킹 방식은 잊어야 합니다. 스마트폰에 이어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와 구글 Bard까지 나온 마당에 아직도 남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 방식으로는 기업을 유지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창직은 지금까지 없었던 직업을 찾아내고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직업을 만들면서 누군가가 이미 시작한 비즈니스를 따라 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라도 건집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부터 재정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존재 이유가 명확하면 부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다른 기업이나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동반자가 됩니다. 10년 전 필자가 창직전문가로 일을 시작할 때 필자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을 결코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퇴직자들이 인생 다모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할 것을 독려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필자를 경쟁자로 여겼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창직과 관련한 필자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가능하면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에게 책을 보내기도 하고 강연을 하면서 필자 외에도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싸워 이기는 것은 하수이지만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