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와글와글] 남유럽 떠돌던 서른일곱 하루키, 와인은 자유 영혼의 상징

나이 때문인가, 더위 탓인가, 아니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마음이 무거워진 탓일까? 오늘도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더 자고 싶지만 잠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이른, 애매한 새벽 시간을 가리켜 영어권에서는 ‘스몰 아워즈’(small hours)라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을 꺼내 들었다. 소중한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상실감이 그 책을 다시 선택하게 했는지 모른다.

이 소설은 서른일곱 살 주인공이 보잉 747기의 좌석에 앉아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하려는 순간 기내에 흐르던 비틀스의 음악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터져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노래는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성 나오코가 가장 좋아하던 곡이며, 소설의 원제목도 ‘노르웨이의 숲’이다. 주인공에게 그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나오코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 난 가끔 무척 슬퍼질 때가 있어. 왜 그런지 모르지만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 외롭고 춥고 어둡고, 아무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내가 신청하지 않으면 레이코 언니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아.”

원제목과 달리 이 소설에서 노르웨이라는 장소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틀스의 노래에서 ‘Norgwegian Wood’는 ‘노르웨이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産) 목재’를 뜻하기에 번역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영어책을 자주 번역하는 하루키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 노래의 가사 ‘그리고 깨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다’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던 것 같다. 숲은 깊은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미로를 헤맨다는 하나의 메타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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