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tolerance)란 불어에서 온 용어인데 원래 자기와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용인하는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똘레랑스가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관용(寬容)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유럽에는 지금도 오래전 이미 사라진 로마제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27년부터 시작해서 동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한 기원후 1453년까지 따진다면 거의 1500년이나 됩니다. 역사가들은 로마 제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이유를 바로 이 똘레랑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용감한 군인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후에는 그들을 몰살하지 않고 그들의 대표를 세워 그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전장에 나가서 싸웠지만 패한 장수들에게 다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유목 민족들은 침략을 한 후 현지인들을 몰살하고 자기 유목 민족을 우두머리로 세워 그 지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유목 민족에게는 바로 이 똘레랑스 정신이 부족했습니다. 친구의 우정은 결혼해서 함께 사는 배우자보다 더욱 진하고 오래가기도 합니다. 우정이 귀중한 이유는 서로의 약점을 알려주고 자신과 다른 친구의 생각을 들어주는 똘레랑스에서 비롯됩니다. 대체로 우리에게는 똘레랑스가 부족한 편입니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흑백논리가 지배적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받아들이기는커녕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 더욱 심합니다. 상대를 넘어뜨려야만 내가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친구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서로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간혹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타협을 이루는 관용과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그리고 도대체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제삼자의 몫입니다. 혼자서 의견을 개진하고 판단까지 하려고 하니 해당 이슈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감정만 서로 건드리며 상처를 쌓게 됩니다. 원활하게 소통을 하기 위해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두가 많은 노력을 합니다.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는 똘레랑스라는 덕목을 쌓아야 합니다. 이런 덕목은 결코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축적되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표출됩니다. 아무리 자신과 다른 의견이 있어도 인내하며 끝까지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래야 똘레랑스가 생겨납니다.
똘레랑스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편의주의가 아닙니다. 첨예하게 서로가 다른 의견으로 충돌하면서도 좀 더 나은 결론을 얻기 위해 조금씩 서로 양보하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남의 의견을 들어주는 방법은 진정한 똘레랑스가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설명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냉정하게 들으며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똘레랑스는 말이나 글도 중요하지만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똘레랑스를 융통성이라고도 합니다. 설득력이 있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원래 똘레랑스와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똘레랑스는 외래어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조직 내에서 또는 심지어 정치권에서 좀 더 원활한 소통을 원한다면 똘레랑스로 실마리를 풀어보면 어떨까요? 아무리 단단하게 얽혀 도무지 흔들리지 않는 불통의 상황도 똘레랑스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