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은 뒤 제주도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몇 달 동안 책을 쓰느라 육체와 영혼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있다고 느꼈을 때 괴테의 시 한 편이 여행 충동을 일으켰다. “당신은 아는가, 저 레몬꽃 피는 나라를? / 그늘진 잎 속에서 금빛 오렌지 빛나고 / 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 불어오며 / 은매화는 고요히, 월계수는 드높이 서 있는 / 그 나라를 아는가?”
괴테가 알프스산맥 넘어 로마에 체류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로 레몬과 오렌지는 따뜻한 남유럽을 상징한다. 괴테처럼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팬데믹의 여파 때문에 귤나무가 노랗게 익어가던 제주도로 향했다. 나는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 바다 특유의 갯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소박한 바닷가에 숙소를 정했다.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인공적으로 꾸민 곳이 아니라 하루 종일 파도 소리와 새소리, 풀냄새, 동네 사람들의 정겨운 제주도 사투리가 들려오는 동네 골목이었다. 낮에는 어촌 마을 골목과 한적한 바닷가, 그리고 서귀포 ‘작가의 산책길’을 걷다가 지치면 숙소로 돌아와 독서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여행 가방에는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넣어왔다. 노터봄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지만, 저널리즘과 여행을 결합한 훌륭한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는 변치 않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스페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다. 사실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여자와 친 구는 내 곁을 떠났지만 한 나라는 그리 쉽사리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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