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이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광범위하게 해석해 보면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는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데 반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여기서 굳이 학문을 떼어놓고 보면 인문은 인류의 문화입니다. 흔히 인문학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그 오해의 출발은 바로 인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인문학은 문과를 전공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한번 이과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는 평생 마치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입니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그런 구분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융복합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전과자입니다. 융복합을 전공했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전과자란 학교에서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전공자는 그 전공에 딱맞는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직장생활을 하던 1980년대에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한국IBM에서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위해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한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이었죠.
그 때 필자도 그런 채용 방식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을 다시 해보니 그만큼 그들의 사고가 활짝 열려 있었던 겁니다. 최근에 필자를 만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필자가 문과 출신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학부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물론 공부에는 애당초 별로 관심이 없어서 열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필자를 인문학적 성향을 가졌다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를 따져보니 바로 필자의 독서 성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의식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독서를 통해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성향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인문학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일모작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자신의 전공과 그에 따른 학습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기 보다 자연현상이나 기술적인 면을 파고 들기 때문에 인간 탐구에 대한 노력은 비교적 적게 합니다. 하지만 막상 직장을 떠나게 되면 누구나 당장 인간 탐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람을 통해 일의 성과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삶의 철학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 하게 마련입니다. 인문학은 결국 삶의 목표를 정하는 나침반을 찾는 과정입니다. 독서를 하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고 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독서가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