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고향은 크립톤 행성입니다. 아버지 ‘조―엘'(수퍼맨의 아빠)이 지구를 구하라고 저를 보냈단 말이죠.”
2008년 10월 미국 뉴욕 맨해튼. 천주교 뉴욕대교구 주최로 열린 자선 만찬장. 턱시도를 입고 연단에 올라 ‘수퍼맨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에서 태어났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나이가 있었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였다. 그는 한 가지 비밀을 더 공개하겠다고 했다. “사실 제 중간 이름(후세인)은 제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은 분이 대충 붙인 겁니다. 제 진짜 중간 이름은 ‘스티브’입니다. 그러니까 제 이름은 ‘버락 스티브 오바마’입니다, 하하.”
당시 오바마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반복해서 ‘출생지가 불분명하다’ ‘이슬람 교도다’라는 논란을 제기하고 있었다. 오바마는 이런 정적(政敵)들의 주장을 이날 대번에 ‘웃기는 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미국 정계에선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막말 구사’가 아니라 적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약점을 교묘히 가리는 ‘위트의 전략’이 유용한 무기로 여겨진다. 루이지애나주립대 언론학과 커비 고이델 교수는 책 ‘정보의 시대에 정부, 그리고 정치’에서 ‘유머는 대중이 즐겨 이야기할 소재를 던져주고 때로는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 거물들은 중요한 연설을 앞두고 유머 집필자를 별도로 고용한다. 예를 들어 오바마는 연례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을 위해 만화 ‘심슨’과 코미디 채널인 ‘코미디센트럴’의 작가 등을 데려다 지도를 받는다. 재선에 성공하고 나서 열린 올해 4월 출입기자 만찬에서 오바마는 통쾌한 입담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특히 지난해 대선 당시 공화당에 막대한 정치 기부금을 낸 카지노 재벌 셸던 아델슨을 놀려댔다. “1억달러(약 1120억원)를 냈다면서요! 그 정도 돈이 있으면 섬을 하나 사서 ‘노바마(Nobama·오바마는 안 돼)’라고 이름을 붙여도 되잖아요? 아니, 차라리 나한테 1억달러를 주고 대선에 나가지 말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하.”
오바마는 2011년 백악관 만찬에서도 자신을 공격해온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가리키며 ‘한 방’을 날렸다. “도널드, 이제 내 출생 논란 그만 캐고 진짜 의미 있는 일을 규명하세요! ‘미국의 달 착륙이 날조인가’, ‘라스웰 외계인 사건의 진상은’ 같은 문제들 말이죠.” 그 자리에 있던 트럼프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