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지식을 많이 얻기 위해 독서하는 사람이 있고 남보다 탁월해지기 위해 독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독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신 수양을 위해 독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독서의 목적 중에서 으뜸은 단연 지혜를 구하는 독서입니다. 지혜(智慧, wisdom)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이었던 솔로몬은 여호와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 지혜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여호와는 흡족해하면서 지혜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았던 부와 영광도 함께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오늘날까지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혜와 비슷한 단어로는 통찰력이나 통섭을 들 수 있겠습니다. 독서의 성과물이 지혜나 통찰력이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독서를 하면서 지혜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솔로몬처럼 신이 지혜를 내려 주시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지금 시대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지혜는 깨달음에서 옵니다. 깨달음은 생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독서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물의 이치와 세상의 흐름을 깨달아 알려면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이 가득 차면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 어렵습니다. 우선 마음이 평온해야 합니다. 독서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지금 여기까지 자신이 오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겸손은 지혜를 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솔로몬은 비록 왕이 되었지만 신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했던 거죠. 프로골퍼로서 겸손한 사람으로 미국의 톰 왓슨(Tomas Sturges Watson)을 누구나 꼽습니다. 에이지 슈팅(age shooting)을 9번이나 하고 PGA 투어에서 메이저 우승 8번을 포함한 39승을 올린 톰 왓슨입니다. 그는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친절한 이웃 아저씨 같은 모습입니다. 그는 젊은 선수들을 포함한 누구와도 함께 라운딩을 하고 나면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정면을 보고 똑바로 서서 인사하고 그날 라운딩 하면서 상대 선수가 잘했던 것을 칭찬하며 격려해 줍니다. 바로 이런 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합니다.
다시 독서로 돌아가 볼까요? 독서는 울퉁불퉁 모난 우리의 마음을 다듬어 줍니다.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못된 성질을 잡아줍니다. 정신없이 산만하게 날아다니는 생각을 붙잡아 줍니다. 독서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겸손하고 부드러워집니다. 비록 많은 양의 독서는 하지만 생각이라는 프로세스(process)를 거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음이라는 고지에 오르지 못합니다. 많지 않은 독서량으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거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 기술이 물밀듯 쏟아져 나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새로운 지식을 모두 독서로 섭렵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를 읽고 열 가지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이 필요한 곳에는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사람이 해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는 독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