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포용은 품성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여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세종대왕은 철저하게 공적(公的)인 분야에서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사적(私的)인 부분은 교화(敎化)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인재를 쓰는 데 편견이나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공적(功績)을 통해 허물을 덮게 하는 강점경영을 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에 대해서는 항상 긍휼히 여겼지만, 무조건 어질게만 하지 않고 법치의 효율성이 전체 백성들에게 더 큰 이익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포용력은 무조건적인 포용이 아니라 공과 사의 구분을 철저히 하고 목적지향적으로 취한 포용이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을 그저 쉽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한글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_ 《포용의 힘》본문 중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국왕이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포용력에 관해 쓴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세종대왕 시절, 병조판서를 지낸 조말생에게 엄청난 비리 사건이 터져 수많은 신하와 전국의 유생들로부터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지만, 세종은 조말생의 관직을 파하고 2년여의 짧은 유배생활만을 처벌로 내렸다. 7년 후, 세종은 우리의 북방 국경을 지키고 명나라와 외교적으로도 원만하게 일할 적임자로 조말생 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해 그를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했고, 실제로 조말생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최윤덕 장군과 함께 ‘4군 6진’을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엄격한 법치주의를 내세웠고, 특별히 조말생을 편애한 것도 아니었던 세종이 그를 죽이지 않고 나라에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유를 저자는 위와 같이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