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직업 일반론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그는 소설가라면 자신만의 학교를 가져야 하는데 독서가 가장 중요한 학교라고 단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독서는 훌륭한 학교입니다. 평균치를 만들기 위해 규격화 한 커리큘럼 대신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짤 수 있고 자신만의 방식에 따라 수업을 할 수 있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학교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법규에 의해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한 교육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지금은 정규 학교 교육이 위기를 맞은 시대입니다. 정규 교육을 하는 학교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학교 교육 방식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이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방식의 교육은 지금까지 고수해 온 학교 교육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는 누구나 아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어느 학교를 가나 쉽게 눈이 띕니다. 하지만 실제 일선 교육에서는 창의력 보다는 평균 학습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통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고 적응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튀면 죽는다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이제는 제대로 튀어야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세인트 존스 대학은 4년 동안 100권의 인문고전만 읽고 토론하는 교육 방식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에 서툰 우리나라 학생들이 적응하기 위해 무척 고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누굽니까. 선배들의 어려움을 전해 듣고 나중에 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인문고전이 무엇이길래 세인트 존스 대학은 이런 방식을 취할까요? 그들은 독서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학생들에게 가져다 주는지를 진작 깨달았던 겁니다. 필자는 오히려 이런 과정을 우리나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틴에이저 시절에 독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으면 나중에 어떤 공부에 도전해도 거뜬히 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영수 과목도 중요하지만 무한 경쟁 시대에 적응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필자도 알고 싶습니다. 적어도 필자는 아직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세인트 존스 대학은 이런 점을 벌써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독서 방법과 글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지만 무작정 독서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도 사고력과 적응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선택하는 방법도 교육이고 독서 방법과 글쓰기 모두 교육의 일환입니다. 처음부터 잘 읽고 잘 쓰기를 기대하지 말고 습관이 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독서는 학교입니다. 아무리 이모저모 따져봐도 아주 멋진 학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