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출판사 서평]
지난 100년,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유시민이 가려 뽑은 20세기의 결정적 장면

전면개정판과 초판의 다른 점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20세기’라고 할 수 있다. 초판을 집필하던 1980년대 후반이 20세기의 한복판이었다면, 지금은 20세기를 훌쩍 넘긴 시점이다. 20세기를 돌아보고 21세기를 내다보며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건들을 추릴 시간적 거리가 생긴 것이다. 20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사라지는 것도 새로 생겨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꾼 세계전쟁이 두 차례나 일어나는 가운데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인 볼셰비키혁명이, 가장 중대한 ‘기술적 사건’인 핵폭탄 개발이, 가장 큰 ‘혁명적 사건’인 디지털 컴퓨터의 발명이 20세기를 지배했다(375쪽). 그리고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여전히 그 사건들에서 자유롭지 않다.

드레퓌스 사건(1장), 사라예보 사건(2장), 러시아혁명(3장)처럼 20세기에 막을 내린 일들은 이제 사건 너머의 메시지를 여러 각도에서 곱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다. 초판 집필 당시 한창 뜨거웠던 팔레스타인(7장)과 핵폭탄·핵무기(10장) 문제는 현재진행 중이라 그간의 변화와 사안의 쟁점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20세기를 만든 11가지 결정적 장면에는 저마다의 시공간적 무대가 있으나, 모두 다 연결되어 있더라는 익숙한 깨달음은 당부처럼 곳곳에서 확인된다. 20세기를 보내며 느낀 뒤늦은 소회와 자신도 모르게 변화된 역사관에 대해서는 에필로그에 꽤 긴 분량으로 담았다. 20세기를 보내고 나니, 유시민은 이제 역사를 쉽게 낙관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가속화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혜택을 입었고 앞으로 더 큰 변화를 마주하겠지만, 기후위기나 핵전쟁 앞에서 호모사피엔스는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이 신이 되리라고 보지 않”(386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담담하고 성찰적인 문장들은 우리 각자에게 20세기가 무엇이었냐고 질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기울어진 세계를 바로 보는 법
역사 공부만이 줄 수 있는 앎의 기쁨
『거꾸로 읽는 세계사』 독자 리뷰 중에는 세계사 공부의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애초에 한국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공부했고, 그것을 나누고 싶어 쓴 책이기에 지식을 전달하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지식소매상 유시민만의 스토리텔링은 과감 없이 발휘되고, 짧게는 20년 길게는 100년 넘게 진행된 일련의 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간다. 범위도 넓고 헷갈리기도 쉬운 세계사를 공부할 때 첫 번째로 권할 만한 책으로 무리가 없다. 게다가 전면개정판에는 각 장 앞에 개별 연표를 넣어 사건의 분기점을 짚어주는 역할도 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유통되는 세계사에 균형을 맞춰보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가령 9장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을 다루는데 제목을 ‘맬컴 엑스’로 달았다. 익히 알려진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의 업적을 동일선상에 놓고 교차하며 서술하지만 킹 목사에 비해 덜 알려진 맬컴의 생을 기려보려는 마음이다. 8장은 두 차례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발발 과정과 그 밑에 깔린 미국, 프랑스, 남북베트남 간의 권력관계를 찬찬히 풀어내지만 결론에 이르러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베트남에서 퐁니·퐁넛 학살 등을 저지른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모습이다.

유시민이 말하듯 역사 공부는 즉각적인 쓸모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쓰는 일의 중심에 ‘역사’를 두었던 건 그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앎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기술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가치를 다시 한번 나누고 싶어 33년 전에 나온 책을 가다듬은 것이니, 이제 우리가 직접 경험해볼 차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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