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隱退, retirement)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은퇴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뒤로 물러나 숨어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에 이는 맞지 않습니다. 사전부터 고쳐야 합니다. 영어식으로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조용히 물러나 유유자적하며 지내면 곤란합니다. 평균 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을 때는 열심히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산업화와 대가족 시대에는 은퇴를 해도 괜찮았습니다. 여러 명의 자녀들이 열심히 부모를 이어 일을 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았고 일손을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행복추구권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그만두면 행복지수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는 <은퇴가 없는 나라, 2013>와 <한국의 시간, 2021>이라는 저서를 통해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함께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고 일관성 있게 강조했습니다. 일시적인 복지는 포퓰리즘이지만 지속적인 복지를 위해서는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우리가 가진 DNA를 활용해 성장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정년 연장이나 조기 퇴직은 문제 해결의 핵심이 아닙니다. 국가는 국가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각자의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현재의 모든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가 들면 나이가 많은 대로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찾아 일할 수 있습니다. 겨우 예순 살을 넘기고 이제는 뒤로 물러서서 조용히 살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해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나브로 의욕 상실에 빠져들고 일상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노동도 전혀 하지 않게 됩니다. 젊을 때는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 현장에서 일했지만 나이 들면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지혜가 활짝 피어납니다. 지식과 정보가 무기가 되는 미래 시대에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시니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늘어날 전망입니다. 비록 직장 일선에서는 퇴직을 해도 일손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는 경쟁적인 관계가 아님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관계입니다. 힘과 패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젊은이들이 하고 지혜와 노련미로 할 수 있는 일은 시니어들이 맡으면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세대 간 조합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지낸 베이비부머들의 다양한 경험과, 디지털과 속도전에 능한 젊은이들의 협업이 이루어진다면 세계 무대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일찍 은퇴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그냥 쉬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만 13세 중학교 1학년 학생들로부터도 똑같은 대답을 듣습니다. 매일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에 지쳐 그냥 쉬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필자에게는 모두가 쉬겠다는 말은 그냥 말의 습관처럼 들립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쉴 때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