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설마’란 낱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한 달여 전, 벤츠를 타고 온 중년의 모녀가 노숙인을 위한 무료 도시락을 받아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터무니없는 욕심과 몰염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배우 윤문식의 단골 대사가 절로 떠올랐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싸가지.’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린잎이나 줄기를 가리키는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코로나 세상이 너무 힘들어선지 요즘 들어 부쩍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싸가지가 있는’ 일이 많으면 좋으련만, 거꾸로 ‘싸가지 없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한데 이 ‘싸가지’라는 말, 표준어가 아니다. 많은 이가 즐겨 쓰는 입말로 자리 잡았는데도 ‘싹수’의 강원, 전남 사투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엔 싹수의 사투리가 제법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전남 지방의 ‘느자구’나 충청 지방에서 쓰는 ‘느저지’, 경북 문경과 상주 지방의 ‘양통머리’가 그렇다. 이 중 느자구는 요즘 들어 ‘누가 뭐래도’ 등 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아따, 느자구없는 가시나.” 극 중 한억심 할머니의 찰진 대사다. 사전대로라면 “싹수없는 가시나”란 소린데, 사람들은 그보단 ‘싸가지 없다’는 뜻으로 대부분 받아들인다. 재미있는 건, 할머니가 내뱉는 느자구없다엔 ‘내 사랑 싸가지’ 같은 애정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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