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밑지고 팝니다” 오그랑장사의 눈물

올해는 없었던 것으로 치고 다시 2020년을 시작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올 한 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이럴까 싶다. 오죽했으면 자영업자들이 ‘몹시 어렵고 힘들다’는 뜻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을까. 가히 ‘오그랑장사’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사실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는 말은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한데 오그랑장사가 사전에 올라 있는 걸 보면 생판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왜 있잖은가. 가게 문을 닫게 됐다면서 하는 폭탄 세일처럼 오그랑장사는 밑지는 장사를 말한다.

이에 반해 곱으로 이익을 내는 장사는 ‘곱장사’이다. ‘되넘기장사’는 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장사를, ‘듣보기장사’는 시세를 듣보아 가며 요행을 바라고 하는 장사를 말한다. 얼렁장사와 동무장사는 여러 사람이 밑천을 어울러서 하는 장사다. 요즘의 동업(同業)이다.

장사의 세계에도 재미난 우리말이 많다. ‘에누리’가 대표적이다. 에누리는 원래 ‘물건을 팔 때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뜻했다. 일종의 ‘바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인 ‘값을 깎는 일’로 쓴다. 그러니까 파는 사람이 에누리를 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에누리를 해 샀다면 결국 제값을 주고 샀다는 말이 된다. 이런 말 씀씀이를 반영해 사전은 두 가지 뜻 모두를 에누리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빚쟁이’도 에누리와 닮았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빚을 진 사람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말글살이가 편리해지는 건 좋은데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선 ‘-쟁이’란 표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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