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결핍’이 아니라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는 거대한 정보의 파도에 휩쓸려 다닙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파도를 거대한 쓰나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Gemini나 챗GPT를 통해 몇 분 몇 초 만에 수천 자의 글을 만들어내고, 방대한 데이터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수많은 정보 중 내 삶과 비즈니스에 진짜 유익한 것은 무엇인지 가려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능력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흩어진 정보 속에서 보석을 찾아내고 가치를 부여하는 ‘지식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입니다.
큐레이터, 가치의 원석을 발견하고 맥락을 만드는 사람
본래 ‘큐레이터(Curator)’라는 말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히 창고에 쌓인 유물을 전시실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수만 점의 소장품 중에서 이번 전시의 목적과 주제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을 엄선하고, 관람객들이 그 작품을 통해 새로운 감동과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동선을 짜고 설명글을 붙입니다. 큐레이터의 손길을 거치면 평범해 보이던 유물도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즉, 큐레이터는 ‘선별’과 ‘배치’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지적인 설계자입니다.
이 개념을 지식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이 바로 ‘지식 큐레이터’입니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바다를 떠다니는 무수한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골라냅니다.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여 나열하는 ‘수집가’와는 다릅니다. 지식 큐레이터는 정보에 ‘맥락’을 부여하고, 복잡한 지식을 서로 ‘연결’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통찰(Insight)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안목’과 ‘해석력’이 발휘되는 지점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왜 지금 큐레이션인가?
과거에는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힘이었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고급 정보를 먼저 아는 사람이 승리하는 구조였죠. 하지만 지금은 클릭 몇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논문도 읽을 수 있고, AI가 전문적인 지식까지 막힘없이 대답해 줍니다. 이제 정보는 더 이상 희소 자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흔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데이터 쓰레기’가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많은 검색 결과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수많은 정보 중에 지금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믿음직한 가이드를 찾습니다. AI가 정보의 양을 책임진다면, 우리 인간은 정보의 ‘질’과 ‘방향성’을 책임져야 합니다.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사용자를 넘어, 정보를 선별하고 가공하여 타인에게 유용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큐레이션 능력이 곧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지식 큐레이터로 거듭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AI를 이기는 매력적인 지식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나만의 엄격한 거름망을 통해 비판적으로 정보를 필터링해야 합니다.
지식 큐레이터의 첫 번째 임무는 무엇을 보여줄지가 아니라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AI가 생성한 정보는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사실관계가 틀린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보를 접할 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이 정보의 출처는 신뢰할 만한가?”, “데이터 뒤에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합니다. 나만의 정교한 거름망을 통과한 순도 높은 정보만이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파편화된 정보를 연결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현대의 지식은 거대한 그물망과 같습니다. 좋은 큐레이터는 여러 가지 정보를 따로따로 두지 않고 서로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최신 로봇 기술’ 뉴스 하나와 ‘독거노인 고독사’ 뉴스를 연결해 “로봇이 고령화 사회의 정서적 결핍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식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 창의성은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문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점(Dot)들을 연결’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정보에 나만의 ‘목소리’와 ‘관점’을 담아 전달해야 합니다. 똑같은 뉴스를 봐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지식 큐레이터의 진짜 가치는 바로 이 ‘관점’에서 나옵니다. 단순히 남의 글을 링크로 공유하는 것은 큐레이션이 아닙니다. “이 정보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우리 삶에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나만의 경험과 철학을 담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셰프가 식재료에 자신만의 소스를 더해 요리를 완성하듯, 여러분의 지식에 여러분만의 해석이라는 소스를 더해야 합니다. 아주 짧은 코멘트라도 좋으니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습관을 들일 때, 여러분의 큐레이션은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가 됩니다.
당신만의 지식 지도를 그리세요
AI 시대는 우리에게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길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활용해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오직 인간의 몫입니다.
거창한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관심 있게 읽은 기사, 감명 깊게 본 영상, 유익했던 책의 한 구절을 골라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왜 골랐는지, 친구나 동료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공유해 보십시오. 그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 여러분만의 독창적인 ‘지식 지도’가 완성될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파도를 타고 세상을 안내하는 서퍼(surfer)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여러분의 큐레이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