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는 것보다 잘 활용해야 하는 시대

학창 시절,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운 듯 막힘없이 답하는 친구를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영어 사전을 단어 하나 외운 다음 찢어 먹기도 했죠. 빼곡히 채운 암기 노트와 높은 시험 성적은 곧 뛰어난 능력이자 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습니다. 지식의 양이 곧 경쟁력이었던 산업화, 정보화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에는 교과서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능력이 곧 ‘우등생’의 상징이었고, 예를 들어 아침 조회 시간마다 선생님이 불시에 질문하면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학생이 박수를 받곤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답을 외우는 속도’가 일종의 경쟁이 되었고, 벽에는 전국 모의고사 등수표가 붙어 학생들의 순위를 매겼습니다. 기억력과 암기력이 곧 지능의 척도로 여겨졌습니다. 학교 수업은 주입식 위주였고,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외우고 재현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물결이 거세어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게임의 법칙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에 실시간 접근이 가능한 시대. 이제 ‘누가 더 많이 아는가’는 더 이상 핵심 질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이며, 창의적으로 활용하는가’입니다. 정보의 단순 축적이 아닌, 정보의 연결과 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으로 떠올랐습니다. 기술 발전과 데이터의 폭증 속에서 정보 그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보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의 생존 무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현실과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이 외우는 것’을 중시하고, 시험 성적으로 개인의 역량을 재단하며, 어른들조차 ‘얼마나 알고 있는가’로 서로를 평가하는 문화가 잔존합니다. 학습은 여전히 결과 중심으로 치우쳐 있으며,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를 키우기보다는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는 연습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낡은 고정관념은 창의적 사고와 자율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로막고, 개인의 성장은 물론 기업과 국가의 미래 경쟁력까지 저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학습 도구와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정보 활용 격차 또한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보를 머릿속에 쌓아두는 것에서 벗어나, 정보를 ‘도구’로 삼아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암기와 반복 학습이 아닌, 실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지혜’를 기르는 방향으로 학습과 실행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학교 교육은 물론 성인 학습, 직무 교육, 자율적 학습 등 모든 배움의 장에서 이러한 변화가 촉진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학습자는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서 창조자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더해 콘텐츠를 만들고,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나 도구를 고안해 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 제작자처럼 다양한 정보를 결합해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거나, 업무 현장에서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안서를 작성하는 사람들도 창조자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 문제 중심 학습(PBL), 협업 기반 학습 등은 이러한 창조적 역량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방법이며, 이는 평생학습의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개인의 경력 개발과 사회적 이동성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보를 잘 찾아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다음 네 가지를 제안합니다.

정보 활용 시대의 핵심 역량

1. 정보 탐색력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단순한 키워드 입력을 넘어, 효과적인 검색어 조합을 설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검색엔진의 특성과 정보의 최신성, 다양한 플랫폼의 탐색 방식에 대한 이해가 요구됩니다. 또한 정보 검색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 출처 간 비교 분석 능력도 중요합니다.

2. 정보 가공 및 재구성 능력

수집한 정보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 분석과 요약, 시각화, 비교, 구조화 등을 통해 의미 있는 정보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복잡한 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바꾸거나, 핵심만 정리해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챗GPT나 Perplexity와 같은 AI 도구는 이러한 작업을 빠르게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이며, 향후에는 ‘정보 편집자’로서의 인간의 역할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3. 문제 해결 중심의 활용력

정보를 실제 문제 해결에 연결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한 소상공인이 고객 리뷰 데이터를 분석해 매장 운영 방식을 개선하고 매출을 향상한 사례처럼, 현실 문제를 정보 기반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집니다. 이는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역량과 결합될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문제 해결력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도 창의적 대응이 가능한 유연성을 포함해야 합니다.

4. 비판적 사고와 판단력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고, 허위 정보나 편향된 정보를 구분해 내는 능력입니다. 정보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평가하고, 그 생산 배경과 의도를 이해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균형 감각을 길러야 합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되는 정보 편향에 맞서기 위해, 사고의 유연성과 자기 성찰도 요구됩니다. 이는 디지털 시민으로서의 윤리와 책임의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실행의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지금,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력’이 개인과 조직,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순한 암기와 반복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탐색, 활용, 분석, 창의, 실행, 그리고 공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학습과 성장이 절실합니다.

특히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의 고유한 사고력, 판단력, 감수성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산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누구와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사람의 몫입니다. 교육 현장, 직장, 일상에서 우리는 이러한 역량을 끊임없이 키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역량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실질적인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그 위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문턱을 넘는 자만이 AI 시대의 주체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체는 기술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억의 힘’이 아니라, ‘실행의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실행의 시작은 우리 안에 있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지금, 이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