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난범(衆怒難犯)’이란 말이 있다. 분노하여 일어선 대중을 당해내기 어려우니, 공분 살 일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 말의 위력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내 탓 아닌 남 탓에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젖어 있던 여권이 참패한 뒤 고개를 숙였다.
시인 나태주는 ‘행복’이란 시에서 행복의 세 가지 조건 중에 첫째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는 상황을 눈 뜨고 바라보면서 내 집 장만의 꿈을 버리다시피 한 2030세대가 넘쳐난다. 그들에게 이번 선거는 어쩌면 ‘화병(火病)을 내리는’ 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에 귀 막고, 민심을 귀넘어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줬다.
‘귀넘어듣는다’는 건, ‘귓전으로 듣는다’와 같은 뜻으로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흘려듣는 것을 말한다. ‘귓등으로 듣다’와 닮았다. 이와 반대로 정신을 바짝 차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귀담아듣는다’, ‘귀여겨듣는다’고 한다. ‘눈여겨보다’와 통하는 말이다.
귀를 볼 때면 드는 의문이 있다. 생일을 왜 ‘귀빠진 날’이라고 하며, 잘난 사람의 생김새를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번듯하다’고 할까. 모르긴 몰라도 보고 말하는 것 못잖게 ‘잘 듣는’ 자세를 중히 여겼기 때문에 귀를 앞세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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