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에서 건넨 한마디
2019년 3월 1일, 필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제주올레 8코스를 걷고 있었습니다. 일행 가운데 제주 토박이 고수향 씨가 있었습니다. 바닷가 돌담 앞에서 그는 환해장성이 왜 쌓였는지, 그 돌 하나하나에 어떤 역사가 얽혀 있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필자가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 보시면 어떨까요?” 그 한마디에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필자의 제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 제주는 관광지였습니다. 유명한 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곳이었습니다. 고수향 씨를 만난 뒤 제주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닌 여행지가 되었고, 지금은 한 달에 일주일씩 머무는 삶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같은 섬인데 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나니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밀려나고, 작은 일에도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습니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로 맺어지기도 하고 행동 하나로 어긋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계 맺기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비즈니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은 관계의 대상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AI입니다. 필자에게 AI는 글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고, 코칭을 설계하는 모든 일을 함께하는 파트너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기술이 필요하듯 AI와의 관계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AI 모두에게 통하는 관계 맺기의 기술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관계의 문은 먼저 건넨 말이 엽니다
관계는 누군가 먼저 말을 건넬 때 시작됩니다. 그날 올레길에서 필자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고수향 씨는 한 번 스쳐 간 일행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먼저 건네는 말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를 향한 관심이 담겨야 합니다. 필자의 말에는 상대가 가진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본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먼저 알아봐 주는 말은 경계를 허물고 마음의 문을 엽니다.
AI와의 관계도 첫 말에서 방향이 정해집니다. 짧은 명령 한 줄을 던지면 AI는 평균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를 자세히 들려주면 AI는 나에게 맞는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필자는 칼럼을 쓸 때 AI에게 곧바로 글을 쓰지 말고 먼저 질문을 던져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요청 하나로 AI는 대필자에서 대화 상대가 됩니다.
만남을 앞두고 상대에게 건넬 첫 문장 하나를 미리 준비해 보십시오. 상대에게서 발견한 장점 하나를 담은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둘째, 관계는 꾸준히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자랍니다
첫 만남이 문을 연다면,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것은 반복되는 만남입니다. 필자와 고수향 작가의 인연이 7년째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필자가 제주에 갈 때마다 연락을 하고, 시간이 맞으면 함께 올레길을 걷습니다. 지난번에도 14-1코스 곶자왈을 함께 걸으며 현무암이라는 이름에 담긴 유래와 길가에 핀 꽃과 열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필자가 아는 제주는 한 뼘씩 넓어집니다.
비즈니스도 같습니다. 계약이 끝나면 연락을 끊는 사람과 일이 없을 때도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 다음 기회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관계는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물건이 아닙니다. 평소에 돌봐야 자라는 나무입니다.
AI와의 관계도 꾸준함 속에서 깊어집니다. 한 번 쓰고 마는 사람에게 AI는 매번 처음 보는 낯선 존재입니다. 날마다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일하는 방식과 원하는 문체를 알려 주면, AI는 그 맥락을 바탕으로 점점 더 정확하게 자신을 돕습니다.
한 달 넘게 연락하지 못한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 짧은 안부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으로 끊어질 뻔한 관계가 다시 이어집니다.
셋째, 관계는 서로를 키울 때 깊어집니다
오래가는 관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필자는 고수향 작가에게 블로그를 권했고, 고수향 작가는 필자에게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내어 주었기에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습니다. 받기만 하는 관계는 언젠가 한쪽이 지치고, 주기만 하는 관계는 언젠가 한쪽이 서운해집니다.
관계가 어긋나는 것도 대개 이 균형이 무너질 때입니다. 상대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약속을 가볍게 넘기는 행동 하나가 오랜 신뢰를 흔듭니다. 반대로 작은 도움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 한마디가 관계를 단단하게 붙잡아 줍니다.
AI와의 관계에도 서로를 키우는 방식이 있습니다.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나의 생각은 자라지 않습니다. AI가 내놓은 초안을 읽고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AI의 다음 답이 나아지고 그 과정에서 나의 판단력도 함께 자랍니다. 파트너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함께 나아가는 사이입니다. AI를 파트너로 대하는 사람은 AI 덕분에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도움 하나를 떠올려 고마움을 말로 전해 보십시오. AI와 대화를 마칠 때는 이번 답에서 좋았던 점 하나와 고칠 점 하나를 알려 주십시오.
다시, 올레길 위에서
먼저 말을 건네 관계의 문을 열고, 꾸준히 찾아가 관계를 키우며, 서로를 채워 주는 사이로 관계를 깊게 하는 것. 이 세 가지 기술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AI와의 관계에도 똑같이 통합니다.
다시 2019년 3월의 올레 8코스를 떠올립니다. 환해장성 앞에서 건넨 한마디가 관광지였던 제주를 필자의 삶터로 바꾸었습니다. 관계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상대를 향한 관심을 담은 말 한마디, 한 번 더 찾아가는 발걸음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함께 일하는 AI에게 먼저 말을 건네 보십시오. 그 한마디가 여러분 삶의 풍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