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 있다고 믿었던 문
코칭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 이 말에는 늘 망설임이 붙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되묻습니다. “왜 안 됩니까.” 짧은 질문 하나에 표정이 바뀝니다. 못 하는 이유를 찾던 사람이, 안 될 이유가 무엇인지 되짚어 보기 시작합니다.
영어에는 Why not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 흔히 “왜 하필 나야(Why me)”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힘이 없습니다. 상황을 원망할 뿐,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순서를 살짝 바꾸면 전혀 다른 문장이 됩니다. “왜 나는 안 되는가(Why not me).” 앞의 말이 과거를 향한 한탄이라면, 뒤의 말은 지금부터를 향한 질문입니다. 이 말속에는 두 가지 힘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는 힘, 그리고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합니다. AI는 대충 물어도 답을 내놓습니다. 그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잃어 갑니다. 세상은 당연한 것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다고 믿었던 그 자리에서 더 많은 길이 열립니다. 이 질문을 삶에 들여오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자신을 가로막는 문패부터 다시 읽으십시오
사람들은 흔히 “저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합니다”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문패를 답니다. 그 문패는 대부분 한 번의 실패나 지나가는 평가에서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름표가 되어 버립니다. “나는 발표를 못한다”, “나는 숫자에 약하다”, “나는 새로운 걸 배우기엔 늦었다”, “나는 컴맹이다” 같은 말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문장은 한 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문패를 붙인 사람 자신도, 그것이 언제부터 왜 거기 걸려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문패가 실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발표를 몇 번 잘 해낸 사람도, 아주 오래전 한 번의 창피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발표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문패를 계속 달고 다닙니다. 그 문패가 새로운 기회 앞에서 손을 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나는 이건 못한다”고 스스로 믿어 온 일 하나를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그 문장 뒤에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 하나를 붙여 보십시오. 그 믿음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사실인지 하나씩 짚어 보십시오. 문패를 다시 읽는 사람만이, 그 문이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당연하다는 팻말을 의심하십시오
문패가 개인의 것이라면, 팻말은 조직과 관행의 것입니다. “원래 그렇게 해 왔습니다”라는 말은 회의실 어디서나 들립니다. 이 말은 편리합니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 뒤에는,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굳어진 방식이 숨어 있습니다.
조직이 오래 지켜 온 방식일수록, 그 팻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들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데 혼자 “왜 이 길로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질문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도 꺼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직의 역사를 돌아보면, 방향을 바꾼 결정적 순간은 대부분 그 불편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이건 당연한 겁니다”라고 말할 때,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딱 한 번만 물어보십시오. “왜 당연합니까.” 명확한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한 틈을 먼저 발견합니다. 당연함을 의심하는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다른 방법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셋째, 문손잡이를 직접 돌려 보십시오
질문만으로는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다음은 손잡이를 실제로 돌려 보는 일입니다. 퇴직을 앞둔 어느 직장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될까요.” 돌아온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왜 안 됩니까.” 그는 곧바로 큰 결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퇴근 후 한 시간씩, 마음에 담아 온 일을 아주 작게 시도했습니다.
처음 몇 주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 가자 주변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반응이 다음 걸음을 내딛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왜 안 됩니까”라는 질문에서 멈추고 실제로 손잡이를 돌려 보지 않았다면, 그 질문은 마음속의 좋은 생각으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질문과 실행 사이에는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만이 문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시도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 “왜 안 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일을 가장 작은 형태로 실행해 보십시오. 이메일 한 통을 보내 보고, 낯선 사람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 보고, 오래 미뤄 온 시도를 딱 십 분만 해 보십시오. 문은 직접 밀어 보기 전에는, 잠겼는지 아닌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손잡이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이, 질문을 현실로 옮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시, 그 문 앞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문패를 다시 읽고, 당연하다는 팻말을 의심하며, 문손잡이를 직접 돌려 보는 것 – 이 세 가지가 쌓일 때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이 세 가지는 순서대로 하나씩 완성해야 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오늘은 문패를 읽고, 내일은 팻말을 의심하고, 다음 주에는 손잡이를 돌려 보는 식으로 삶 속에서 반복되며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코칭 자리에서 망설이던 그 사람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사람이, “왜 안 됩니까”라는 질문을 손에 쥐고 돌아갔습니다. 이 질문은 답을 미리 주지 않습니다. 다만 닫혀 있다고 믿었던 문 앞에 서게 만듭니다. 그 문을 여는 것은 결국 질문을 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 앞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멈추어 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안 될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시간만큼, 될 이유를 찾는 연습은 부족했습니다. 오늘,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 하나에 “왜 안 되는가”를 물어보십시오. 그 짧은 질문 하나에서, 오랫동안 닫혀 있다고 믿었던 문은 다시 열리기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