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란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의 양극단으로만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마치 검은색과 흰색 외에는 다른 색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검은색과 흰색 외에도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이 존재합니다. 컴퓨터의 원리는 2진법입니다. 1과 0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1은 온(on)이고 0는 오프(off)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필자는 한때 1과 0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장을 퇴직하고 보니 아라비아 숫자에도 2부터 9란 숫자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흑백논리를 벗어나면 넓은 세상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흑과 백 사이에 그레이존(grey zone)이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한국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어령 교수는 이것을 가위바위보로 설명합니다. 주먹을 쥐면 바위가 되고 주먹을 펼치면 보가 됩니다. 하지만 주먹의 일부를 쥐고 일부를 펼치면 가위가 됩니다. 보는 바위를 이기지만 가위가 나타나면 집니다. 그런데 가위는 다시 바위가 나타나면 지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흑백논리밖에 없어 보입니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정치는 건설적인 협상과 타협으로 이루어지는데 흑백논리로는 함께 살아가기가 불가능합니다. 배움의 길에 있는 학생들과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흑백논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흑백논리를 뛰어넘으면 창의적인 생각이 솟아납니다. 모든 일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다양한 논리를 펼칠 수 있습니다.
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배우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책을 읽어도 저자의 주장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점점 생각의 힘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맞고 틀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맞고 틀린 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서 매사 수학 공식처럼 달달 외워서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궁리하게 됩니다. 자신이 예측하는 대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한다면 굳이 생각을 해야 할 이유조차 없어집니다. 흑백논리를 뛰어넘으면 유연성이 생기고 융통성이 확장됩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바뀌어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진짜 이유는 어제보다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이 요동치고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을 철통같이 믿고 의심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흑백논리를 뛰어넘는 일이 겉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휘두르려는 주변의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혹을 떨쳐내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로 나가면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합니다. 흑백논리를 뛰어넘으면 조금씩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