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면 인천 자유공원에 갑니다
2026년 9월 21일 월요일
저는 해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 무렵이면 인천 자유공원을 찾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몇몇 친구들이 함께해 주었습니다. 여섯 명이 모였고 그중 세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이 언덕을 매년 오르는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5년 전 창직학교 맥아더스쿨을 만들면서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동문학가 고정욱 박사께서 맥아더라는 브랜드네임을 권해 주었습니다. 이름을 받아들고 나서야 그 사람의 생애를 제대로 찾아보았고, 한 대목에서 오래 멈춰 섰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쉰일곱이던 1937년에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보통은 여기서 한 사람의 경력이 끝납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마닐라에 남아 필리핀군 창설을 도왔고, 1941년 예순한 살에 다시 군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15일, 만 일흔의 나이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이라던 그 작전입니다.
쉰일곱에 군복을 벗은 사람이 일흔에 생애 가장 큰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저는 이 한 줄을 15년째 붙들고 있습니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우리는 몇 살에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그 질문 하나로 지난 세월 동안 많은 분들께 인생 이모작과 삼모작 코칭을 해 왔습니다. 자유공원에 오르는 일은 저에게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보는 연례 행사입니다.
올해도 해설은 ROTC 15기 목형균 동기가 맡아 주었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학교를 모두 인천에서 마치고 지금도 이 도시에 살면서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인천 역사문화 해설사로 이름이 나 있는데, 반나절을 따라다녀 보니 왜 그런 평을 듣는지 알겠더군요.
먼저 항미단길의 도자기 공방 민을 찾았습니다. 조은경 작가의 공간입니다. 인천시 대상을 여러 차례 받았고, 작품은 인천시와 중구청의 외교관 기념품으로 쓰입니다. 쇠락하던 골목이 예술과 장인의 손끝으로 되살아난 자리에서, 한 사람이 오래 한 가지를 붙들면 동네의 얼굴이 바뀐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유공원에 올랐습니다. 이 공원의 첫 이름은 만국공원이었습니다. 열강의 공동 조계지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자유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 하나에 한 나라의 운명이 담겨 있습니다. 근처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자리가 있고, 홍예문 안팎으로 갈라졌던 조계지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같은 언덕인데 안과 밖의 삶이 달랐습니다.
맥아더 동상 뒤에는 학도병 기념비가 있습니다. 열넷에서 열여섯, 지금으로 치면 중고등학생 나이의 소년 소녀들이 자원해 인천에서 대구와 마산을 거쳐 낙동강 전선까지 걸어가 싸웠습니다. 이 기념비는 국가의 지원을 받기 전에 참전용사 후손들과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습니다. 낙동강에서 맥아더가 한 소년병에게 왜 여기 남아 있느냐고 묻자, 후퇴 명령을 받지 못해 자리를 지킨다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스로 지킬 의지가 있는 나라라야 도울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그때 굳어졌다고 합니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소년 소녀들의 발걸음이 그 작전의 바닥을 받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내려와서는 신포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진흥각에서 늦은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인천은 짜장면이 탄생한 도시입니다. 산둥에서 건너온 이주민들과 부두 노동자들의 끼니에서 시작된 음식이 이제 온 국민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밥상에서 나온 소감이 좋았습니다. 처음 오신 세 분이 자유공원과 맥아더, 학도병 이야기를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며 반가워하였습니다. 좋은 해설은 아는 사실을 늘려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 있는 자리를 달라 보이게 합니다.
자유공원 언덕에서 인천항을 내려다보면 70년 전의 바다가 그대로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나이입니다. 쉰일곱에 한 번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일흔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시작할 수 있을까요.
내년 9월에도 이 언덕에 오릅니다. 내년에도 함께해 주실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