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러시아의 망명 귀족이자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망명지 베를린의 집 침실이 너무 좁아, 때로는 욕실에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궁핍했지만 행복감에 넘친 글들을 썼다. 그는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아쉬워할 뿐 가난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잃어버린 재산을 애통해하는 러시아 망명객들을 경멸했다. 반면 이집트의 파룩 왕은 권좌에서 쫓겨난 후 도박장에서 전 재산을 날렸고, 누이동생인 파티아 공주는 미국에서 파출부 생활을 하다가 남편의 총에 생을 마감했다. 1832년 개혁법과 함께 몰락하기 시작하여, 1892년의 상속세법과 1929년 대공황, 1946년 인도 독립으로 빈털터리가 된 영국의 귀족계급 가운데서도,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한 데번셔 공작은 1970년대에 예술품 시장에 불어온 경제적 붐을 타고 사상 최고가로 렘브란트의 작품을 팔아서 재기할 수 있었다. 반면 허둥지둥 두려움에 사로잡혀 일찍이 헐값에 재산을 처분했던 집안들은 더 이상 팔래야 팔 것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결국 은행이나 경매장, 심지어 버스 기사나 웨이터 같은 직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저자 폰 쇤부르크는 500년 동안 영락의 길을 걸어온 귀족 가문의 전통과 근검절약을 미학적 수준까지 끌어올려 실천했던 부모님의 생활 방식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덕분에 경제적 곤경 속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품위를 잃지 않고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해지면서도 부유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호화 유람선은 서너 시간밖에 항구에 정박하지 않는다. 배의 정박료가 비싸서 1분 연장될 때마다 선박 회사의 이익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짧은 시간 안에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중국산 공예품을 구입한다. 이처럼 ‘관광을 위한 여행’이 아닌 ‘진정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잘 아는 도시에서 저렴한 임대료로 집을 빌리고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그곳의 생활을 체험하는 게 낫다. 저녁 내내 음식 이야기만 한다거나, 먹으면서 구경하느라 한마디도 안 하고 비싼 음식값을 지불하는 외식보다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공기 탁한 헬스클럽에서 ‘Just do it’이라고 쓰인 분홍색 티셔츠 차림의 근육질 남성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기보다는 집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공원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뛰는 것이 낫다.
우리는 마케팅에 영합한 매스미디어로 인해 일류 레스토랑, 브랜드 가구, 해외여행 따위의 불필요한 소비를 강요받고 있으며 가난은 창피한 것이고 실패한 삶이라고 세뇌당한 결과 모두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계층의 생활을 흉내 내려는 속물근성에 지배된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적으로 빈곤한 ‘가난한 부자’가 아닌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유한 빈자’가 될 것을 제안한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그 가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부유하고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독자적인 생활양식’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