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테너 김건우의 리사이틀 ‘ 도니체티의 광채’

2026년 7월 4일 토요일 밤,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테너 김건우의 ‘도니체티의 광채’ 리사이틀에 참석한 소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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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의 시간을 넘어 마주한 광채: 테너 김건우 리사이틀 ‘Éclat Donizetti’
2026년 7월 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은 한 편의 연주회를 넘어 거장과 연주자가 시공을 초월해 조우하는 신비로운 예술적 순간을 품었다. 테너 김건우가 선보인 ‘Éclat Donizetti(도니체티의 광채)’는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남긴 숨겨진 보물들을 오늘의 호흡으로 되살려낸, 미학적 승화의 기록이었다. 특히 연주자의 요청으로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 이번 무대는 도니체티 음악이 지닌 서사의 흐름을 끊지 않고, 관객을 단숨에 그의 음악적 생애 한복판으로 이끌려는 결단으로 읽힌다.

1. 운명적 만남, 그리고 재발견의 무대
이번 리사이틀을 관통하는 것은 “도니체티는 내 운명”이라는 김건우의 고백이다. 2016년 오페랄리아 우승 이후 세계 무대에서 자신만의 예술적 좌표를 찾아가던 그에게, 다시 한번 결정적인 길을 열어준 이가 바로 도니체티였다. 2019년 이탈리아 베르가모 도니체티 페스티벌에서 미완성작으로 남겨졌던 오페라 <니시다의 천사>의 주역을 맡으며 시작된 이 인연은, 이번 무대를 통해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예술적 일체감으로 완성되었다. 과거의 거장과 현재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이 지점은, 벨칸토라는 고전적 유산이 오늘 어떤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2. 벨칸토의 미학: 기술 너머의 감정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사전적 뜻을 넘어, 정교한 기교와 우아한 감정 전달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성악의 도달점이다. 김건우는 이번 무대에서 “테크닉을 테크닉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목소리로 증명해 보였다.

도니체티가 추구한 ‘성악 중심의 드라마’는 연주자의 호흡과 선율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에야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김건우는 벨칸토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술을 완벽히 소화하면서도 과시를 배제하고, 인물의 내면적 진실을 먼저 노래했다. 그 덕분에 관객은 기교의 난해함에 압도되기보다, 음악이 품은 정서의 본질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다.

3. 역사의 귀환: 로저 파커가 발굴한 미공개 악보
이번 공연이 지닌 독보적 가치는 영국 음악학자 로저 파커(Roger Parker)와 이언 스코필드(Ian Schofield)가 발굴하고 정리한 도니체티의 미공개 자필 악보를 국내 초연했다는 데 있다. 이 귀중한 사료들은 2028년 이탈리아 리코르디(Ricordi)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될 예정이며, 김건우의 목소리는 그보다 앞서 생생한 실연으로 이 문헌들에 첫 생명을 불어넣었다. 공연의 제목 ‘Éclat’처럼, 사장될 뻔했던 200년 전의 기록들은 비로소 눈부신 광채를 되찾았다.

– *Il sospiro (한숨)* — 1842년 작, 카를로 구아타의 시에 붙인 우아한 선율
– *Malvina la bella sull’arpa (아름다운 말비나, 하프 곁에서)* [국내 초연] — 오시안 전설의 서정을 담은 곡
– *Non v’è più barbaro (이보다 더 잔인한 이는 없네)* [국내 초연] — 사랑의 냉혹함을 탄식하는 극적인 곡
– *V’era un dì che il cor beato (내 마음이 행복하던 날이 있었네)* [국내 초연] — 상실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섬세한 선율
– *Non giova il sospirar (한숨 쉬어도 소용없네)* [국내 초연] — 체념에 이른 화자의 내면을 노래한 곡

4. 양식의 궤적: 이탈리아 벨칸토에서 프랑스 그랑 오페라로
공연은 도니체티의 삶을 따라 이탈리아의 섬세한 서정성에서 프랑스의 웅장하고 극적인 양식으로 옮겨가는 여정을 좇았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니시다의 천사(L’Ange de Nisida)>와 이를 개작한 <라 파보리트(La Favorite)> 사이의 정서적 변모였다.

전자가 ‘사라져야 할 행복과 잃어버린 미래의 혼란’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동경과 이상화의 대상’으로 그 심리를 한층 확장한다. 김건우는 두 작품 사이의 미묘한 결을 명료하게 짚어내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어두워지고 깊어지는 도니체티의 음악적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순교자들(Les Martyrs)>의 아리아 ‘나의 유일한 보물’은 화려한 기교보다 인물의 숭고한 내면과 풍성한 화성에 집중하며, 초기 벨칸토에서 프랑스 그랑 오페라로 나아간 도니체티 후기 양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5. 아티스트 크리티크: 테너 김건우, 그 목소리와 예술의 확장
테너 김건우는 2016년 오페랄리아 우승 이후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영아티스트를 거치며 세계적인 벨칸토 테너로 입지를 다져왔다. 이번 정규 프로그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를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각인시킨 결정적 작품은 9개의 하이 C를 요구하는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 중 ‘아, 나의 친구들이여(Ah! mes amis)’였다. 그 곡이 그의 기술적·예술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선명한 기준점이라면, 이번 리사이틀은 그 기준점을 넘어 학술적 탐구심과 깊이 있는 해석력을 지닌 ‘예술 인문학자적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자리였다.

객석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가득 찼고, 이는 그의 풍부한 가창력과 호소력이 청중의 가슴에 온전히 가닿았음을 말해준다. 벨칸토라는 뿌리를 견고히 지키면서도 푸치니와 베르디의 낭만주의 레퍼토리로 외연을 넓혀가는 그의 행보는, 한국 클래식 시장에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6. 결론: 시간이 증명한 광채, 미래로 흐르는 선율
도니체티가 200년 전 남긴 악보들은 김건우라는 탁월한 매개자를 만나, 오늘의 관객 앞에서 눈부신 광채로 다시 태어났다. 다작 속에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도니체티의 열정과, 그 숨은 가치를 발굴해낸 연주자의 집념이 만나 이번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성취가 되었다.

인터미션 없이 이어진 긴밀한 호흡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운명과 정면으로 마주한 진실한 기록이었으며,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가시지 않는 여운은 이 리사이틀의 예술적 무게를 증명한다. 테너 김건우의 목소리로 되살아난 도니체티의 유산은 앞으로도 우리 시대 클래식 음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이정표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