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서초문화원 임원·회원 문화탐방으로 강원도 영월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7시 40분 서초문화원 주차장을 출발한 버스가 세 시간 가까이 달려 영월에 닿았습니다. 구명숙 원장님과 두 부원장님들, 이사와 대의원, 회원들이 함께한 멋진 하루였습니다.
닭을 모은 부부, 꼬꼬토피아
첫 방문지는 꼬꼬토피아였습니다. 백봉현 부부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모은 닭 관련 수집품을 전시하고, 닭을 소재로 한 소품도 직접 만드는 공간입니다. 한 가지에 오래 매달린 사람의 살림살이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됩니다. 꼬꼬토피아를 둘러보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이어 영월문화원으로 가서 엄흥용 문화원장과 김길수 영월군수를 만나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점심은 ‘박가네’에서 단종의 밥상을 받았습니다. 어수리나물밥과 더덕구이에 열한 가지 반찬이 올랐습니다. 유배지의 밥상이라는 이름치고는 정갈하고 넉넉했습니다.
땅이 만든 감옥, 청령포
영월 땅의 팔 할 이상이 석회암입니다. 물에 잘 녹는 암석이라 하천이 깊이 파고들며 구불구불 휘어 흐르는 감입곡류 지형이 만들어졌습니다. 45,000년 전 물길이 옮겨가며 생긴 옛 물길, 구하도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이었다가 밭이 되고 과수원이 되었다가 지금은 사람이 사는 땅이 되었습니다. 홍수 때는 수문을 닫아 물을 가두고, 평소에는 연꽃을 심어 생태 학습장으로 씁니다.
청령포는 이 지형이 만들어낸 천연 감옥입니다. 삼면을 서강이 감싸고 뒤쪽은 육육봉 바위절벽이 막아섭니다. 배가 없으면 드나들 수 없습니다. 열일곱 살의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에 내려진 것이 1457년이고, 머문 기간은 겨우 두 달 남짓이었습니다.
솔숲 한가운데 관음송이 서 있습니다. 높이 삼십 미터의 거목으로, 어린 왕의 유배 생활을 보고 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갈라진 나무 틈에 앉아 한양을 그리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노산대 절벽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고, 돌을 하나씩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조 2년에 세운 금표비에는 출입을 금하는 구역이 적혀 있는데, 홍수로 땅이 넓어져도 그 구역에 포함된다는 내용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어가는 1990년대 중반 영월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했습니다. 발굴에서 기와 조각과 깨진 그릇 정도만 나온 터라 실제 초막보다는 크게 지어졌습니다. 임금께 예를 갖추고 싶었던 마음이 그만큼이었습니다.
규범을 벗어난 왕릉, 장릉
장릉은 조선 왕릉의 원칙을 거의 지키지 않았습니다. 왕릉은 한양 백 리 안에 두는 법인데 장릉은 오백 리 밖에 있습니다. 낮은 구릉이 아닌 해발 270미터 산자락에 앉았고, 정자각과 능이 일직선으로 놓이지 않고 꺾여 있습니다. 병풍석도 난간석도 무관석도 없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능은 처음부터 능이 아니었습니다. 강에 버려진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거두었습니다. 옳은 일을 하다 화를 입는다면 달게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몰래 묻힌 무덤을 군민들이 59년 동안 남몰래 보살폈고, 중종 대에 이르러 위치를 찾았으며, 세상을 떠난 지 241년 만인 숙종 대에 와서야 왕릉이 되었습니다.
두부와 과자를 짓던 절, 보덕사
보덕사는 장릉의 원찰입니다. 능의 제사에 쓸 두부와 과자를 만들어 올리던 절입니다. 주불전이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보전인 것은 단종의 극락왕생을 비는 곳이기 때문이고, 서방정토를 향해 서쪽을 바라봅니다. 백육십 년 넘은 해우소는 최근 국가 보물이 되었습니다.
장릉 재실 앞에서 들은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배식단 제례 때는 자손 없이 떠난 충신들을 위해 숟가락 서른두 개를 쌀에 꽂는다고 합니다.
영화 한 편과 3만 6천 명의 군
영월군 인구는 3만 6천여 명, 인구소멸 지역입니다. 해마다 25만 명 남짓이던 방문객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후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오늘도 청령포 나룻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영월 사람들에게 장릉은 사적지가 아니라 생활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시험을 앞두고 찾아가 절을 하는 곳입니다. 왕릉이 있다는 이유로 인구 4만이 안 되는 이 작은 고을에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섰습니다. 영화가 사람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보는 것은 영월 사람들이 오백 년 동안 지켜온 것입니다.
뜻밖의 인연
이날 행사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함께한 한국시인협회 이사 조승래 님이 경남 함안 군북초등학교 후배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십팔 년째 시인으로 활동하며 시집도 여러 권 펴냈다고 합니다. 인연은 이렇게 돌아서 다시 만나는가 봅니다.
맑은 가을날, 좋은 분들과 영월을 잘 다녀왔습니다.






